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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저출산 부추기는 GTX

입력
2019.02.01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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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수도권 광역급행철도’, 즉 GTX-A 노선 착공식과 그 외 노선 건설 계획이 발표됐다. 단언컨대, 이러한 기조를 유지한다면 적어도 저출산 현상의 변화를 볼 수 없을 것이다. 한국사회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초저출산 현상을 20년 가까이 경험하는 이유에 대해선 여러 주장이 나오고 있다. 출산 주체로서 여성을 차별하는 구조 위에 주거ㆍ교육ㆍ의료 비용 등 자녀돌봄비용 부담, 청년들이 미래를 안정적으로 설계할 수 없는 불안의 확산 등 모두 나름 타당한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현상이 있다. 수도권 인구 집중이다.

현재 저출산 현상은 사실 1980년대 초반부터 나타났다. 1984년부터 출산율은 이른바 대체출산율 2.1 이하로 내려갔다. 이후 그 수준을 한번도 회복한 적이 없다. 그리고 2003년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저출산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 그런데 저출산 현상의 심각성은 정책 차원의 담론이었을 뿐, 한국사회 대중이 체감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대중의 절대 다수가 수도권이나 광역시도에 밀집해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구는 줄어든다는데, 일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일할 사람을 찾기 어렵거나 빈집이 늘어나는 현상을 볼 수 없다. 물론 지금은 출산율이 낮지만 여전히 인구성장률이 마이너스가 아니라는 이유도 있다. 그러나 한국과 같은 수준의 수도권 및 광역대도시 중심 인구집중률 정도라면 인구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되더라도 대다수 대중이 저출산 현상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피부로 경험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느리게 다가올 것이다.

서울의 출산율은 이미 1.0 이하로 내려갔지만, 서울시 입장에서 저출산 자체가 그리 시급하게 대응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주거비용 문제 때문에 젊은 가족들이 경기도로 대규모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서울시 인구 자체가 줄어들기도 하지만, 구직과 교육 요인 때문에 청년들은 여전히 서울로 몰린다. 경기도로 이주한 청년들도 하루 3-4시간 수준의 출퇴근 고난길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오간다. 출산율이 아무리 낮은 수준이어도 서울, 경기, 인천이 느긋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러나 이미 여러 시군구 지자체는 인구소멸 위기를 실감하기 시작했다. 출산율 자체가 서울, 경기, 인천과 광역 대도시보다 높게 나와도 이대로 가면 해당 지자체는 소멸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대기업이 아무리 잘 나가도 한국사회 일자리의 절대 다수는 중소기업이 만들어 낸다. 그래서 중소기업의 위기는 일자리 위기로 이어진다. 수도권과 대도시에 인구가 집중해 살기 때문에 당장의 저출산 현상이 지금처럼 지속될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실감할 수는 없어도, 사람이 살지 않는 지자체 수가 늘어나면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미래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KTX가 노선망을 확대하면서 국민들이 실제 사용하는 영토 면적은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여러 연구 결과가 있다. 출산율 1.0 이하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수도권과 대도시에서는 사람 귀한 줄 모르는 상황이 기형적으로 지속될 것이다. 그 사이 거주인구가 사라져 지역 인프라가 황폐해지는 지자체에는 주민들이 살기 어렵기 때문에 다시 그 지자체 청년들이 서울과 수도권, 광역대도시로 이동하는 인구 소멸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서서히 끓는 물 속(대도시 집중 현상과 여기서 생겨나는 문제)에서 영문도 모르고 있던 개구리(대한민국)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을 떠올릴 법하다. 수도권 집중을 억제하고 지역을 살려야 저출산 현상의 반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GTX 공사 테이프를 끊은 분들도 과거에는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나? 서울과 수도권에서 눈을 밖으로 돌려 보시라. 지역이 도와달라 외치고 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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