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관 수장들에 “학교 돌아가야” 조롱… 2차 북미회담서 즉흥적 판단 여지 커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비롯해 이란, 이슬람국가(IS) 등의 위협에 대한 미 정보당국의 판단을 하루 만에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마이웨이 행보지만, 현직 대통령이 자신을 보좌하는 정보기관 수장들을 조롱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이며 공개적으로 충돌해 트럼프 정부의 외교 방향에 대한 신뢰성을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특히 대북 문제에서 행정부의 방침과 상관 없이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 정상회담 담판장에서 즉흥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우려도 끊임없이 흘러 나와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북한과의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좋다”며 “핵실험도 없고 유해를 받았고 인질이 돌아왔다. 비핵화의 괜찮은 기회(decent chance)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지만, 전임 정부 말기에 (북미)관계는 끔찍했고 매우 나쁜 일이 일어나려고 했다”며 “지금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곧 김정은을 보게 되길 고대한다”며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 큰 차이다”고 강조했다. 이는 전날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상원 정보위원회에 ‘세계 위협 평가’ 연례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북한이 핵무기와 생산능력을 완전히 포기할 가능성이 적다고 평가한다”고 한 발언을 반박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문제를 두고서는 아예 정보 당국자를 겨냥해 인신공격성 비판을 가하며 불편한 심기를 쏟아냈다. 잇단 트윗을 통해 “정보기관 사람들은 이란의 위험성에 관해 매우 수동적이고 순진한 것처럼 보인다"며 "그들은 틀렸다!"고 말했다. 이란이 트럼프 정부가 탈퇴한 핵 협정을 여전히 준수하고 있으며 핵무기 개발 활동에 착수하지는 않았다고 평가한 전날의 DNI 보고서를 겨냥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어쩌면 정보 요원들은 학교로 돌아가야만 할 것이다”고 비꼬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IS에 대해서도 "2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지만, 칼리파(이슬람교 왕국)는 곧 파괴될 것"이라고 말해 전날 IS에 대해 “반란 위협세력으로 남아 있다"고 한 정보당국의 판단을 뒤집었다.
이 같은 공개 충돌을 두고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의 외교정책의 목표에 대해 대중과 동맹국들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보 기관이 제공하는 사실관계를 무시하고 자신의 감에 의존하면서 ‘독불장군’ 식 대응을 계속해 미국 외교 방향에 대한 의구심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2월말로 예고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향방을 두고서도 기대 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지속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2월말 회담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계획이다”며 2월말 회담 개최를 사실상 공식화했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회담 준비를 위해 내달 4일께 판문점에서 북한과 실무 협상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북미간에 비핵화 의제 조율이 진전되고 있다는 신호는 나오지 않아 남은 한달 동안 실무선에서 세부 조율이 마무리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CNN은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 17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워싱턴 방문에서 비핵화와 관련해선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고 전했다. 의제 보다는 정상회담 계획에 대한 논의에 집중됐다는 것이다. 한 소식통은 백악관이 너무 짧은 기간에 밀어붙여 비핵화 관련 문제를 진전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시간이 충분치 않다. 이게 북한이다”고 말했다.
이는 결국 핵심 의제는 실무선을 건너 뛰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간 담판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이고 즉흥적인 판단이 개입할 여지가 더 커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이 북한 비핵화 목표에서 후퇴했다거나 주한미군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는 추측도 끊임 없이 나오고 있다. 마크 내퍼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이 이날 “주한미군은 북한과의 협상에서 의제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으나, 정부 관리들의 발언 무게감도 현저히 떨어진 상태다.
이 같은 우려가 커지면서 미 하원은 이날 주한미군 감축을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의 한미동맹 지원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행정부가 주한미군을 2만2,000명 이하로 감축하려면 △국방장관이 한국이 한반도의 충돌을 막을 수 있는 역량을 갖췄는지 △한국 및 일본과 협의했는지 등 여러 조건을 의회에 입증하도록 했다. 지난해 8월 통과된 국방수권법안에 담긴 주한미군 감축 제한 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까다로운 조건을 명시한 것이다. 법안을 발의한 마이크 갤러거 의원은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2차 북미정상회담 전까지 시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사안이 중요한 만큼 법안을 시급히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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