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간부 취업비리와 관련해 검찰에 기소된 공정거래위원회 전ㆍ현직 간부들의 엇갈린 재판 결과에 공정위가 당혹해 하고 있다. 검찰 기소를 이유로 지난해 업무에서 배제됐던 지철호 부위원장이 무죄를 선고 받으면서 당장 김상조 위원장이 곤란하게 됐다. 전직 간부들에겐 무더기 유죄가 내려져 한편으론 고개를 들지 못할 처지다. 지 부위원장이 업무에 복귀한다면 김 위원장과의 불편한 동거가 이어질 수도 있다.
법원은 31일 공직자윤리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지 부위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 부위원장은 지난 2016년 공정위 퇴임 후 중소기업중앙회 상임감사로 자리를 옮길 때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를 받지 않았다는 혐의로 지난해 8월 기소됐다.
그러나 지 부위원장은 취업 당시 중기중앙회는 공직자윤리법에서 규정하는 취업제한 기관이 아니었다고 항변했고, 공직자윤리위도 작년 3월 이 취업이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법원도 이 점을 받아들여 지 부위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 부위원장은 지난해 8월 검찰 기소 결정 이후 김 위원장 지시로 모든 업무에서 배제된 상태다. 사무실에는 출근했지만 주요 사건ㆍ현안 보고, 결재선상 배제는 물론, 공정위 전원회의도 참석하지 않고 있다.
야당 의원들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정무직인 지 부위원장의 업무 배제를 두고 “위원장의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기소 뒤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문제가 될 것으로 판단했다”고 답했다. 반면 지 부위원장은 “업무 배제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지 부위원장은 이날 재판 종료 후 “김 위원장과 업무 복귀를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김 위원장과 지 부위원장의 갈등이 컸던 만큼 지 부위원장이 복귀한다면 공정위 내부에서도 후폭풍이 거셀 전망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8월 법무부와 경성담합(중대한 담합)에 대한 전속고발권(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한 고발권을 공정위에만 부여한 제도) 폐지를 합의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내부의 반발 기류도 거셌다. 지 부위원장과 마찬가지로 업무 배제 상태인 유선주 심판관리관은 지난해 11월 김 위원장을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하며 “직원과 상의도 없이 전속고발권을 넘긴 데 대해 직원들이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 부위원장도 지난해 국감에서 “과잉집행에 대한 방지 대책이 만들어진 뒤에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행정고시(29회) 출신으로 사무관 시절부터 공정거래를 담당해 왔던 지 부위원장은 공정위 토박이 직원들의 대표 격이다.
한편 이날 법원이 정재찬 전 위원장, 김학현 전 부위원장 등 전직 간부들의 죄는 인정하면서 공정위에 대한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다. 김 위원장은 “위원장으로서 지난 과오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다만 지 부위원장의 복귀 여부에는 말을 아꼈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