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 문화가 지배하는 은행권에서 사내벤처 붐이 일고 있다. 핀테크(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금융서비스)를 촉매로 한 금융시장 격변기에 적응력과 경쟁력을 높이는 동시에 새로운 수익원 발굴, 혁신적 인재 양성 등 다각적 효과를 염두에 둔 조치로 풀이된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IBK기업은행은 최근 단행된 조직개편에서 사내벤처 조직(셀ㆍcell) 두 곳을 신설했다. 개인디지털채널부 디지털마케팅팀 내 신설된 ‘크리에이티브’는 혁신적인 광고ㆍ홍보 콘텐츠 제작 임무를 맡았고, 전략기획부 미래사업팀 내 ‘IBK보배’는 상반기에 선보일 중소기업 경영지원 종합플랫폼 ‘IBK박스’와 연계한 사업모델을 발굴할 예정이다.
직원 수가 도합 10명이 안 되는 소규모 조직들이지만 은행이 거는 기대는 높다. 지난해 직원들의 자발적 학습 소모임(COPㆍcommunity of practice) 167개 중 가장 우수한 성과를 낸 모임을 공식조직화 했기 때문이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두 조직을 1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하면서 새로운 수익모델을 발굴할 수 있도록 인력, 예산 등을 전폭 지원할 예정”이라며 “혁신적 인재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계속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8월 직원 공모로 채택된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사내벤처 프로그램 ‘드림셀’을 운영하고 있다. 지점별로 설치 운영되던 고객 대기표 발급기를 업그레이드한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앱) ‘스마트허브’가 대표적 성과다. 스마트허브 앱을 사용하면 전국 840여 우리은행 지점의 대기고객 인원과 예상 대기시간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업무 처리에 가장 적합한 곳을 찾아갈 수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다른 은행들보다 10분의 1 수준의 저렴한 비용으로 유사한 시스템을 구현해냈다”며 “현재 직원을 상대로 내부 테스트를 진행 중으로 조만간 상용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2016년부터 사내벤처 ‘에스파크(SPARK)’를 운영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사업 아이디어를 공모 받아 우수작을 스타트업과 연계해 사업화할 수 있도록 돕고, 해외 벤치마킹 연수도 실시한다. 국민은행은 젊은 직원 3~5명이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에이스(ACE)’를 2017년 3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대화형 비대면 플랫폼 ‘리브똑똑’, 기업 자금관리 플랫폼 ‘스타 자금관리시스템(CMS)’ 등 개발 성과에 고무된 허인 행장은 지난해 11월 디지털 전환 선포식에서 “사내벤처를 적극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하나금융그룹은 최근 정보통신기술(ICT) 전문 관계사인 하나금융티아이에 사내벤처 조직 ‘연결ㆍ개발(C&D) 팩토리’를 출범시켰다.
은행권의 사내벤처 붐은 금융 환경 급변과 관련 깊다. 스타트업이나 대형 ICT기업 등 비(非)금융회사들이 혁신 서비스를 통해 금융시장을 잠식하는 상황이라 시장 맹주인 은행권 입장에서도 이에 대응한 새로운 사업 발굴이 절실한 상황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사내 벤처를 키우면 설령 사업화에 실패하더라도 새로운 실험이나 도전 경험이 축적되면서 장기적으로 비즈니스 발굴에 긍정적 효과를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내 벤처가 경직된 조직 문화를 바꿀 것이란 기대도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프로젝트를 매개로 경영진과 벤처조직이 직접 소통하면 4~5단계에 달하는 의사결정 체계에 구애 받지 않고 민첩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의 사내벤처 실험은 다른 업종에 비해 다소 늦은 편이다. 소비자 취향이나 유행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ICT산업이나 유통업, 새로운 성장동력을 필요로 하는 제조업 등은 수년 전부터 사내벤처를 적극 장려해 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업이 당국 감시를 받는 ‘규제산업’이다 보니 사내벤처 도입에도 다소 보수적으로 접근해온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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