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 대부분이 거쳐간다는 유명한 수학 학원이 있다. 최근 아이 친구 엄마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 학원이 곧 코딩 수업을 개설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소프트웨어 교육이 도입되는 만큼 관심이 많아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아직 학교 현장에서 수업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사교육 시장부터 들썩이고 있으니 참 씁쓸하다.
코딩 하면 대학 때 들었던 포트란과 C언어 수업이 떠오른다. 시커먼 화면에 알파벳과 숫자만 가득한 ‘도스’로 컴퓨터를 처음 접했던 그 시절엔 코딩이란 단어도 거의 듣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인간이 컴퓨터를 원하는 대로 조종하며 일을 시키고, 컴퓨터와 소통하고, 컴퓨터의 도움을 받기 위해 만든 일종의 ‘기계언어’를 20여 년 전엔 프로그래밍이란 이름으로 배웠다. 물론 초등학생은 전혀 몰라도 됐고, 이공계 대학생과 대학원생에게나 필요한 전문 영역이었다.
올해부터 초등학교에서 코딩을 의무적으로 배우기 시작한다는 게 최근 1, 2년 동안 교육시장의 주요 화두 중 하나였다. 처음엔 ‘프로그래밍=코딩’이라고 여겼던 탓에 아이들이 코딩을 배워야 한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온통 영어로 된 수많은 명령어를 암기하고 복잡한 논리 구조와 어려운 수식을 동원해야 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초등학생들이 배운다고? 설마 했다. 그런데 요즘 초등학생용 코딩은 내가 배웠던 프로그래밍과 달랐다.
초등학생인 아이는 방과후학교 컴퓨터 수업에 오래 참여했다. 한글 타자 연습으로 시작해 기본적인 문서 작성이나 인터넷 검색, 파워포인트 만들기 등을 방과후학교에서 배웠다. 기초 단계를 지나 움직이는 화면도 만들고 움직이는 로봇도 만들었다. 그때 썼던 소프트웨어가 바로 코딩용이라는 걸 아이의 방과후학교 교재를 보고 알게 됐다. 엄마가 한창 일할 시간에 수업이 끝난 아이를 어디라도 보내야 했기에 넣었던 방과후학교 수업이 이렇게 도움이 됐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아이가 배운 소프트웨어는 ‘블록 코딩’ 방식이다. 기존 C언어의 어려운 명령어나 논리구조, 수식 등을 쓰임새에 따라 묶어 색깔과 모양, 크기가 다양한 블록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각 블록에는 아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한글로 의미가 적혀 있다. 가령 과거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선 점수가 10점이라고 가정할 경우 ‘If score=10’이라고 일일이 입력해야 했다. 하지만 블록 코딩에선 아이들이 ‘만약 ~라면’이라고 적힌 블록을 마우스로 끌어다 옮겨놓고, ~ 자리에 마우스를 다시 클릭해 score와 10을 선택하거나 적어 넣으면 된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은 어려운 영어 단어를 몰라도, 복잡한 수식을 만들지 않아도 간단한 프로그램을 설계할 수 있다. 아이들이 만든 프로그램은 알록달록한 색상의 화면에 바로 적용돼 작동한다.
아이는 코딩에 재미를 붙였다. 책을 보며 스스로 간단한 프로그램을 디자인하기도 한다. 아직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새 학기부터 학교에서 코딩을 배워도 당장 큰 짐이 될 것 같진 않다. 하지만 학교의 모든 아이가 코딩을 재미있어 할 리 없다.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는 걸 못 견디는 아이도 있을 것이고, 프로그램 짜는 걸 싫어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가 코딩은 좋아하지만, 피아노는 못 견디게 싫어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도 코딩 사교육 열풍이 심상치 않다. 학부모들은 너도나도 아이에게 코딩 선행학습을 시키고 싶어한다. 동네 학원가에선 코딩 교육에 누가 더 전문성을 갖고 있는지 수학 학원과 컴퓨터 학원 사이에 신경전까지 벌어진다고 한다. 컴퓨터 학원에선 ‘수학 선생님들이 컴퓨터를 얼마나 알겠냐’ 하고, 수학 학원에선 코딩의 기본은 수학적 사고라 맞선다. 중학교도 코딩 교육을 도입하기 때문에 엄마들은 이제 초등학교 때부터 ‘코딩 성적’까지 관리해야 하나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작 코딩 교육을 도입한 정부는 다른 이야길 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단순히 프로그램 짜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논리적으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해 가는 사고력을 키워주기 위한 교육”이라고 설명했다. “평가는 결과보다 과정 중심으로 하도록 일선 학교에 권고하겠다”는 것이다.
미래 인재를 키우기 위해 컴퓨터와 논리적 사고력을 교육하겠다는 취지는 참 좋다. 하지만 교육현장은 취지와 다르게 흘러가곤 한다. 코딩 평가 방식은 학교가 결정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정부와 학부모들이 학원 다닐 이유를 하나 더 늘려준 건 아닌지 걱정이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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