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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서 쫓겨나고 정부가 부추겨… 4050, 생계형 창업뿐이었다

입력
2019.02.12 04:40
수정
2019.02.12 09:2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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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영업, 한국 경제 늪이 되다] <2> 그들은 왜 자영업자가 되었나 

 “받아주는 회사 없어 가게 열 수밖에”… 취업자 중 자영업 비중, 미국의 4배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시작해 서모씨가 20여년간 운행해 온 경기 광명시 한 초등학교 앞 문방구를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고영권 기자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시작해 서모씨가 20여년간 운행해 온 경기 광명시 한 초등학교 앞 문방구를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고영권 기자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서모(당시 46세)씨는 경기 광명의 한 초등학교 앞에 문구점을 차렸다. 97년 가을까지 서울에서 대우전자 협력업체 공장장으로 일하던 그였지만 불황에 직장에서 밀려난 40대 중년을 새로 받아줄 회사는 없었다.

서씨는 1년 가까운 구직활동 끝에 문구점 창업을 택했다. 요즘처럼 프랜차이즈가 활성화 된 시기도 아니었고 남들처럼 식당을 열기엔마땅한 기술도 없었다. 문구점을 택한 건 “그래도 부모들이 아이에게 돈을 쓰는 건 아끼지 않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 20여년 사이 그 믿음을 둘러싼 환경조차 또 다시 급변했다. 초등학교 수업준비물은 이제 학교에서 지급하고, 장난감은 대형마트나 인터넷으로 사는 게 보편화돼 학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창업 당시 인근에 5개나 되던 문구점도 이제 2개로 줄었다. 서씨는 조만간 폐업을 고민해야 할 단계다. 그는 “외환위기 직후라 사람을 뽑는 회사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창업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저작권 한국일보]OECD 주요국의 비임금노동자 비중. 강준구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OECD 주요국의 비임금노동자 비중. 강준구 기자

자영업자 비중이 꾸준히 줄고는 있다지만, 여전히 경제활동인구 4명 중 1명이 자영업에 종사할 만큼 자영업은 경제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에서 밀려난 40~50대가, 생계를 위해, 퇴직금 등 목돈을 긁어 모아, ‘치킨집’으로 대변되는 가게를 차리는 것은, 20년 전 외환위기 당시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왜 자영업자가 되었을까.

11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노동력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농업 부문 포함)은 지난해 기준 25.41%에 달한다. 이는 별도 임금 없이 자영업자를 돕는 가족(무급가족종사자)까지 더한 비율이다.

OECD 회원국 중 한국보다 이 비율이 높은 그리스(34.07%), 터키(32.74%), 멕시코(31.45%), 칠레(27.43%)는 농업 중심의 국가다. 반면 미국의 자영업자 비율(6.26%)은 한국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독일(10.20%), 일본(10.40%) 등 공업 중심 국가의 자영업자 비율도 한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탈공업ㆍ외환위기가만든 ‘자영업 공화국’ 

우리나라의 높은 자영업자 비율, 특히 영세 자영업자가 대다수인 현실은 90년대 초 이후 급격한 탈공업화 과정이 빚은 일자리 감소가 우선 원인으로 꼽힌다. 97년 외환위기는 이를 더욱 악화시켰다.

OECD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건설업 포함) 종사자 수는 91년말 약 687만명에서 서서히 내리막을 탔다. 97년말에는 667만명이었지만 1년 뒤인 98년에는 558만명으로 100만명 이상 줄었다. 2017년말 기준으로는 660만명을 기록 중이다.

외환위기 당시 여러 대기업의 퇴출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다시 제조업에서 일할 수 없게 되자 충분한 준비 없이 창업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후 건설경기 악화, 조선업 구조조정 등을 거치며제조업 노동자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노동 유연화 정책은 숱한 실업자를 만들었고 임금노동자에서 밀려난 이들이 자영업을 택했다”며 “반강제로 자영업자가 되었기에 이들은 동시에 저소득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한번 자영업에 발을 들이면 그 굴레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 외환위기 이후 10년이 지난 2008년, 비임금근로자(자영업자+무급가족종사자)가운데는 40대 비중(31.2%ㆍ약 236만명)이 가장 높고 그 다음이 50대(25.5%)였다. 2018년에는 60대 이상이 30.3%, 50대가 30.2% 순이다. 2008년 당시 비임금근로자 대부분을 차지했던 40~50대가 10년 후인 2018년에도 고스란히 연령대를 옮겨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한국노동패널조사(2010~2017년)에 따르면 고용원이 없는 1인 자영업자의 81.0%는 다음해에도 1인 자영업자 지위를 유지했다.1년 사이 새로 직원을 고용한 자영업자는 9.2%, 무급가족종사자로 이동한 비중은 0.4%, 월급을 받는 상용노동자가 된 비중은 2.6%에 불과했다. 이승렬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본부장은 “자영업자는 웬만해선 자영업을 떠나지 않는 경향이 있고, 일부는 실업자나 비경제활동인구로 이동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환경에서 정부는 꾸준히 자영업 관련 대책을 발표하며 오히려 창업을 부추겼다. 99년 처음 소상공인 지원센터가 설립돼 각종 자금지원을 시작했다. 2003년 카드대란 이후 자영업 구조조정이 우려되자 정부는 2005년 ‘영세 자영업자 종합대책(일명 5ㆍ31 대책)’을 내놓는다. 이 대책으로 “2005년은 자영업자가 노동시장 정책의 대상으로 등장한 원년(이승렬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본부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는 ‘프랜차이즈 산업 활성화’ 정책이 추진됐다.

작년 8월 발표된 소상공인ㆍ자영업자 지원대책에는 △근로장려금(EITC) △일자리안정자금 등 직접지원과 더불어 △카드수수료 부담 완화 △상가임대차계약 보호 대상 확대 등 자영업자의 부담을 줄일 정책이 종합적으로 담겼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정책이 자영업 구조조정의 속도를 늦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도균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기업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외환위기 직후 가장 손쉽고 확실한 일자리 창출 정책은 자영업 창업 지원이었다”며 “경제위기로 실업자가 쏟아질 때 자영업은 정부에게 위기를 모면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제조업 종사자와 비임금노동자 수 추이. 강준구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제조업 종사자와 비임금노동자 수 추이. 강준구 기자

 ◇자영업에 내몰리는 50대 

진모(52)씨는 울산 현대중공업 협력사에서 일하던 지난 2015년 회사를 나와 프랜차이즈 가게를 열었다. 조선경기가 꺾이자 진씨는 회사를 나와 거제도의 조선소, 건설현장 등을 전전했지만 일감이 없어 결국 정착하는데 실패했다. 우연히 주변 치킨집이 가게를 내놓자 진씨는 퇴직금과 은행 대출, 친척에게 빌린 돈까지 보태 가게를 인수했다. “하루 13~14시간 일하면서도 종업원 쓸 여유조차 없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고 진씨는 말한다. “이미 투자한 돈도 있고 아이들도 고등학생이라 가게 문을 닫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그는 “5년 전으로 돌아가 치킨집을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할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지금도 명예퇴직, 정리해고 등으로 일자리를 잃은 중장년층은 여전히 자영업의 문을 두드린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비임금근로자의 60.5%가 50대 이상이다. 최근 1년 이내에 사업을 시작한 자영업자 중 56.9%는 회사에서 일을 하던 임금근로자 출신이다. 이들은 사업 준비 기간도 짧다. 신규 자영업자의 49.8%는 사업 준비 기간이 3개월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1년 이상 준비한 비율은 12.7%에 불과했다.

경기 용인에서 치킨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강모(55)씨는 “50세 넘어 퇴직하면 기업에서 쓰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치가 줄어든다”며 “자영업을 시작하는 건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알바보다 못해도, 그만둘 수가 없다” 

“주 52시간도 보장받지 못하고, 직원 월급을 주면 남는 게 없는 지금의 영세 자영업자는 노동시장의 가장 밑바닥이다.” 경남 통영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정모(58)씨는 이렇게 단언한다.

최근 불경기에 따른 매출 감소, 원가율 상승과 최저임금 인상 등 겹악재로 자영업자들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 여파는 상당하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은 8,350원이지만 여기에 4대보험료, 주휴수당 등을 더하면 실제론 1만원 이상이란 게 자영업자들의 하소연이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2000년~2011년 사이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6.2%포인트 감소했는데, 이 중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이 상승한 영향이 43.5~45.2%(약 2.7~2.8%포인트) 정도”라며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은 영세 자영업 비율을 줄이는 등 상당한 파급효과를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폐업 위기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은 한편으로 ‘매몰비용’을 걱정한다. 창업을 하면서 지게 된 빚(인테리어 비용 등)이 누적된 상태에서 가게를 접기란 쉽지 않다.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기약 없는 구직 활동기간 동안 생계를 유지할 수단도 없다.

충북 청주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박모(40)씨는 “지금 상황에서 쫓기듯 가게 문을 닫으면 남는 건 수천만원 빚뿐이고, 그러면 재기할 길도 없다”며 “다시 임금 노동자로 돌아갈 교육 기회와 구직 기간 생계 부담을 덜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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