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투산의 14살 소년 그랜트 톰슨은 비디오 게임을 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친구들과 대화하기 위해 애플 아이폰의 영상통화 서비스 ‘페이스타임’을 작동시켰는데, 친구가 전화를 받지 않았는데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화 신호음이 울리는 중에도 그랜트는 친구의 음성을 고스란히 들을 수 있었고 이 같은 현상은 1분 가까이 계속됐다.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아이폰에 연락처가 저장된 지인들을 ‘도청’까지 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랜트와 그의 엄마 미셸(43)은 아이폰의 이 같은 심각한 ‘결함’을 제조사인 애플에 알리기로 결심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9일 아이폰의 결함을 인지한 소년과 그의 엄마가 이 같은 사실을 애플에 알려주려 했으나, 정작 애플이 이들의 노력을 무시했다고 보도했다.
아들 그랜트로 부터 ‘페이스타임 결함’을 전해들은 미셸은 곧장 트위터와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이 없자 애플 본사로 전화를 걸고 팩스까지 보냈다. 결함이 발생하는 상황을 동영상으로 찍어 이메일로 보냈지만 애플은 묵묵부답이었다.
이틀 뒤에야 애플 직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는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개발자로 등록을 한 뒤 결함을 다시 보고해달라”고만 했다. 미셸은 “애플 측과 이야기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이 회사의 주목을 끌기 위한 우리의 모든 노력은 좌절됐다”며 애플을 향해 쓴 소리를 날렸다.
평범한 아이폰 소비자의 제보를 무시했던 애플은 ‘그랜트의 최초 발견’보다 8일이나 늦은 28일에야 결함을 인지했다. 소셜미디어 상에서 페이스타임에 결함이 있다고 알려지자, 그제서야 일주일 안으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 이에 따라 애플은 다음 업데이트까지 페이스타임 사용을 중단할 것을 소비자들에게 권고했다.
애플에게 페이스타임 사건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종종 겪는 단순한 기기 결함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고객 제안에 귀를 닫은 관료제로 꽉 막힌 공룡기업의 구조적 문제점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그 때문일까. 지난해 4분기 애플 매출은 843억달러(94조3,300억원)로 전년 대비 15%나 감소했다. 매출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을 중국에서의 판매 급감 때문으로 돌릴 수 있지만, 애플이 직면한 핵심 문제는 세계를 주름잡게 했던 ‘혁신’ DNA가 어느 순간 ‘고객을 무시하는 공룡기업’ DNA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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