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주들 밤새우며 백신 접종… 농림부, 경보단계 ‘경계’로 격상
![[저작권 한국일보] 30일 오후 구제역 확진 판정이 내려진 경기 안성시 양성면 한우농장에서 방역관계자가 축사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안성=홍인기 기자](http://newsimg.hankookilbo.com/2019/01/30/201901301619374802_21.jpg)
설 연휴를 사흘 앞둔 30일 오전 8시40분 경기 안성시 방축 1리 마을 입구. ‘방축 1리’라고 쓰인 표지석 앞에 하얀색 가루가 도로 전체를 덮고 있었다.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뿌려진 생석회 가루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자 출입금지 안내문과 긴급초동방역 장소라 적힌 바리게이트가 설치돼 있어 구제역이 발생한 지역임을 알렸다.
통제선 안쪽으로 하얀색 가운을 입은 방역직원 두 명이 구제역 발생 인근 축사의 소 샘플링을 채취하기 위해 걸어가는 모습도 목격돼 예사롭지 않은 상황임을 직감케 했다.
구제역 확진과 소 일부가 매몰된 탓인지 마을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소 울음소리가 적막감을 깨는 유일한 소리였다.
![[저작권 한국일보] 30일 오후 구제역 확진 판정이 내려진 경기 안성시 양성면 한우농장 주변에서 방역관계자가 차량방역을 하고 있다. 안성=홍인기 기자](http://newsimg.hankookilbo.com/2019/01/30/201901301619374802_22.jpg)
마을 경로당 앞에 모인 주민들은 걱정 어린 눈빛이 역력했다. 그중 허름한 점퍼를 입은 한 남성이 연신 담배를 피우며 축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제역이 발생한 농가에서 불과 2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160마리의 소를 키우는 농장주 이원흥(53)씨다.
이씨는 “그동안 전국적으로 구제역이 확산됐을 때도 양성면만큼은 청정지역으로 꼽힐 정도로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던 곳”이라며 “구제역 소식을 듣고 아내와 둘이서 밤새 160마리에 백신과 완화제를 놓긴 했는데 여전히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씨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또 있다. 방역 당국이 구제역 소 매몰 처리 과정에서 죽은 소를 덤프트럭에 싣고 3개의 축사를 지나 300여m 떨어진 매몰지로 간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이씨는 “어젯밤 살처분에 동원된 덤프트럭이 우리 축사 바로 앞에서 차를 돌려 나갔는데 바이러스가 넘어오는 건 아닌지 걱정부터 앞선다”고 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30일 오후 구제역 확진 판정이 내려진 경기 안성시 양성면 한우농장에서 방역관계자가 역학조사를 하고 있다. 안성=홍인기 기자](http://newsimg.hankookilbo.com/2019/01/30/201901301619374802_23.jpg)
구제역이 발생한 축사와 불과 10m, 양쪽이 안 보이게 설치한 누런 천막을 사이를 두고 있는 이창하(67)씨는 방역당국의 샘플링 조사에서 별다른 이상증상을 보이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안심할 단계는 아니란다. 소 46마리 중 비육(수소)보다 번식(암소, 송아지) 소가 더 많아서다. 번식 소는 백신을 맞을 경우 임신이 안 되거나 유산하는 경우가 많아 백신을 자주 놓지 않아 면역력이 상대적으로 더 낮기 때문이다.
이씨는 “2~3개월, 6~7개월 된 번식 소가 수두룩한 상황에서 바로 옆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는데 마음이 편하겠느냐”며 “지난해 10월 임신한 소까지 모두 백신을 맞춰 큰 탈이 없길 바라며, 제발 더는 확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외지인에 대한 경계의 눈빛도 있다. 마을에서 사륜전동기를 타고 나오던 오화성(75)씨도 기자를 보더니 톡 쏘아붙이는 말로 “어디서 왔소”라고 물었다. 외지인이어서 경계하는 듯 보였다.
오씨는 “(구제역으로) 아들이 집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하도 답답해서 축사에 가보려고 나왔다”며 “자꾸 돌아다니지 말고 얼른 돌아가라” 했다. 인근에서 150여 마리를 키우고 있다는 오씨는 구제역이 발생한 농가에서 다소 떨어져 있지만 반경 500m에 포함돼 있어 걱정이 된다고 했다.
구제역 발생으로 불안해하면서도 주민들은 갈등보다 서로 격려해 주는 모습을 보였다. 한 농장주는 “한 부락에서 지내는 사인데 누구네가 걸렸다고 손가락질할 수 없다”며 “아무일 없이 다 지나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날 오후 2시를 기해 구제역에 대응한 위기경보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했다. 가축방역심의회 심의 결과를 바탕으로 이같이 결정했다. 방역 상황 등을 고려해 필요한 경우 시ㆍ도 가축시장도 폐쇄할 수 있다.
또 안성시와 축산 방역 당국은 양성면 한우 농가에서 구제역 증상을 보인 가축만 살처분한 뒤 상황을 지켜보고 추가 살처분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올겨울 들어 첫 구제역이 발생한 금광면 젖소 농가 500m 반경 내에서 구제역 감염항체(NSP) 양성반응이 나옴에 따라 6개 농가 613마리에 대해 예방적 살처분할 예정이다.
안성=임명수 기자 s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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