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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할머니, 기억하고 또 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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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할머니, 기억하고 또 기억할게요”

입력
2019.01.30 15:47
수정
2019.01.30 23:0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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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 3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372차 수요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3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372차 수요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엄마, 할머니는 노란 나비가 돼서 천국 가셨겠죠? 그렇지 않으면 너무 슬프잖아요.”

30일 정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1,372차 수요집회. 이 집회에 참여한 한 아이가 지난 28일 세상을 떠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93) 할머니 영정 사진을 보며 엄마에게 물었다. 아이 손엔 직접 만든 노란색 나비가 들려 있었고, 엄마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무려 ‘1,372번째’ 집회라는 엄연한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김 할머니가 세상을 등진 이후 처음 열린 수요집회는 죄송스러움, 아쉬움, 침통함, 분노 등 여러 감정이 뒤엉켜 있었다.

[저작권 한국일보] 30일 정기 수요집회장에 마련된 김복동 할머니 영정사진 앞에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꽃다발이 한 가득 놓여 있다. 이한호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30일 정기 수요집회장에 마련된 김복동 할머니 영정사진 앞에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꽃다발이 한 가득 놓여 있다. 이한호 기자

쌀쌀한 날씨에도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500여명의 참가한 가운데 열린 집회는 슬픔으로 가득했다. 시민들은 집회장 한 편에 마련된 할머니 영정 앞에 큰 절을 올리며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장미꽃을 올려놓는 저마다의 손은 파르르 떨렸고, 눈물 가득한 눈으로 “죄송하다”며 울먹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묵념을 시작으로 할머니의 생애가 소개되자 끅끅 눈물을 참는 소리만 가득 했다. 한경희 정의기억연대 사무총장은 “김복동 할머니의 삶은 피해 여성에게 용기를 주고 지침이 됐다”며 “자신의 아픔을 딛고 큰 나무처럼 살아가셨다”고 추모사를 올렸다. 시민들은 모두 “할머니 사랑합니다,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며 할머니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자유발언도 이어졌다. 첫 번째 발언자로 나선 홍소연씨는 “지난 세월 제게 용기를 주신 김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듣고 이 자리에 꼭 서야겠다고 다짐했다”며 “수십 년 간 봄을 맞이하지 못한 할머니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기억하고 또 기억하는 것”이라 말했다. 터져 나오는 눈물 때문에 말이 자주 끊겼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내세운 동아리 ‘메모리아’에서 활동한다는 이송림씨도 “예쁜 기억만 간직하는 세상이지만, 우리는 할머니의 한마디 한마디를 다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김복동 할머니가 남긴말_김경진기자
김복동 할머니가 남긴말_김경진기자

김 할머니의 소원은 오직 하나, 일본의 사죄였다. 하지만 1992년 김 할머니가 처음으로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밝힌 이후 27년간 아무 것도 바뀐 게 없다. 수요집회에 처음 참가했다는 이정자(63)씨도 “모든 문제를 다 떠나 한 여성의 인권이 이토록 유린당했다는데 일본 정부의 사죄 한 마디가 이리 어렵다는 것이 같은 여자로서 너무 비통하다”며 “돈으로만 해결하려는 일본 정부의 인식이 용서가 되질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저작권 한국일보]30일 열린 정기수요집회에서 아이들이 소녀상을 바라보고 있다. 이한호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30일 열린 정기수요집회에서 아이들이 소녀상을 바라보고 있다. 이한호 기자

정오에 시작된 집회는 1시간여를 넘겨 마무리 됐다. 하지만 시민들은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옆에 앉거나 소녀상의 손을 꼭 잡아주며 생각에 잠긴 이들이 많았다. 의정부에서 온 김세영(27)씨는 “광화문에 일 보러 왔다가 나도 모르게 이쪽으로 이끌리듯 왔는데 너무 늦은 것 같아 후회된다”며 “좀 더 일찍 왔다면 조금이라도 힘이라도 되어 드렸을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일본대사관 문은 여전히 굳게 닫힌 채 침묵 속에 있었다..

오세훈 기자 comingh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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