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스캔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비밀 회동’을 가진 정황이 포착됐다. 통역사의 대화 기록을 트럼프 대통령이 압수했다는 폭로에 이어, 이번엔 아예 통역사를 대동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 지난해 11월30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통역이나 보좌관 없이 푸틴 대통령과 비공식 회담을 가졌다고 2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두 정상은 저녁행사를 마치고 다른 정상들이 모두 자리를 뜬 뒤, 따로 만나 약 15분 남짓 대화를 나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인인 멜라니아 여사만을 동반한 반면 푸틴 대통령은 통역사 한 명을 대동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정부 관계자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두 정상은 우크라이나 함정 나포 사건, 시리아 내전 등 국제정세에 대해 논의했고 언제 공식회담을 가질 수 있을지 의견을 나눴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시점에 완전한 정상회담은 힘들 것 같다”고 말하자, 푸틴 대통령은 “서두르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편한 시간에 만나겠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애초 미러 정상회담은 정상회의 기간인 지난달 1일 열릴 예정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아르헨티나로 이동하던 도중 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함정 나포 사건을 이유로 들었으나 러시아 스캔들 수사가 옥죄어오자 거리 두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됐다. 이후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정상회의 중 비공식 대화를 가졌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구체적인 대화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를 은폐했다는 의혹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12일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년 동안 다섯 차례 열린 미러 정상회담 가운데 최소 한 차례 통역사가 기록한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 메모를 압수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2017년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노트를 빼앗고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일어난 일을 다른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렸다.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두 정상이 비밀리에 대화를 나눈 만큼 트럼프 대통령과 러시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의구심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뮬러 특검의 수사는 마무리 단계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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