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병철 회장 빼닮았다” 평가… 삼성서 독립해 한솔그룹 일궈내
국내 대표 여성 경영인 중 한 명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3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0세.
1929년 경남 의령에서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고 박두을 여사의 장녀로 태어난 이 고문은 1979년 50세 나이로 뒤늦게 기업 경영에 뛰어들었다. 호텔신라 상임이사로 서울신라호텔의 개보수 작업과 제주신라호텔 건립 등을 이끌었다. 이병철 창업주는 자서전 ‘호암자전’에서 이 고문을 가리켜 “사내로 태어났으면 그룹을 맡겼을 큰 재목”이라 쓰기도 했다. 배포와 섬세함을 동시에 갖춰 아버지 이 창업주를 빼닮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고문은 1983년 한솔제지 전신인 전주제지 고문으로 취임해 현재 한솔그룹의 기틀을 다졌다. 1991년 삼성그룹에서 분리 독립을 추진하며 ‘제2의 창업’을 했다. 사명을 순 우리말인 ‘한솔’로 바꾸고 인쇄ㆍ산업용지, 특수지 등으로 제품군을 확대해 종합제지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또 한솔홈데코ㆍ한솔로지스틱스ㆍ한솔테크닉스ㆍ한솔EME 등 계열사를 설립해 지금의 그룹 면모를 갖췄다.
탄탄대로만 걸은 건 아니었다. 한솔은 1996년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로 선정돼 정보통신 회사로 변신을 꾀했는데, 당시 경쟁 대기업에 비해 자금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탓에 KT에 통신사업을 매각하고 제지 공장까지 파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PCS 사업을 추진했던 이 고문의 차남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이 물러나고 3남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받는 등 그룹 지배구조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이 고문은 삼성가 맏이답게 가족 간 화합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생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고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간 상속 분쟁이 벌어졌을 때 “재산 문제로 형제끼리 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나섰고, 여동생 이숙희씨와 남동생 고 이창희씨의 둘째 아들 재찬씨 등이 이 명예회장 편에 서서 소송에 합류할 때에도 이 고문은 끝까지 중립을 지켰다.
그는 재계에서 손꼽히는 미술 애호가였다. 2013년 오크밸리 내 부지에 조성된 뮤지엄 ‘산’은 고인이 스스로 꼽는 필생의 역작이다. 2000년에는 어머니 유지를 기리며 국내 최초 여성 전문 장학재단 두을장학재단을 설립했고, 이사장을 맡아 여성인재 육성에 힘써왔다.
고인에게는 늘 ‘회장’이 아닌 ‘고문’이란 직함이 붙었다. 세 아들인 조동혁 한솔케미칼 회장, 조동만 전 부회장, 조동길 회장조차 ‘어머니’가 아닌 ‘고문님’으로 부르길 원했다고 한다.
이 고문 빈소에는 막내 동생 이명희 신세계 회장 등 재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줄을 이었다. 이명희 회장이 첫 아이를 가졌을 때 연로했던 어머니(박두을 여사)를 대신해 미국으로 건너가 산후조리를 책임진 게 이 고문이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조카인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이재환 CJ파워캐스트 대표도 빈소를 찾아 고인을 기렸다. 이재환 대표는 “고모님께서 주무시다가 새벽 1시에 편안하게 돌아가셨다. 평소 따뜻한 품성을 지녔던 분으로 저를 가족 같이 대해주셨다”며 눈물 지었다. 유족으로는 조동혁(한솔케미칼 회장) 동만(전 한솔그룹 부회장) 동길(한솔그룹 회장) 옥형 자형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은 2월 1일 오전 8시30분, 장지는 강원 원주 서울추모공원이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