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양시의 한 중소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C(34)씨는 9년 전 근무했던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겪은‘태움’의 경험을 떠올릴 때마다 몸서리가 난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병원에 합격을 했을 때만 해도 C씨는 행복했다. C씨가 첫 발령을 받은 곳은 암병동. 새내기 간호사인 C씨는 말로만 듣던 암환자를 돌봐야 했기에 부담이 적지 않았지만, 환자들을 잘 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C씨의 자신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녀의 교육을 담당한 선배 간호사 때문. C씨의 교육담당인 프리셉터 A씨는 후배 간호사들을 혹독하게 대하기로 소문난 간호사였다. 입사 동기 간호사들이 “너 정말 운이 없다”며 위로를 할 정도였다.
하루 일과의 시작은 A 간호사의 욕설로 시작했다. 남들과 똑같이 간호용품, 차트를 정리했는데 지적을 당하는 사람은 꼭 C씨였다. 화장실 한 번 갈 시간, 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이 일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지적과 핀잔이었다. 다른 간호사들이 보는 앞에서 “OO, 이것도 못해”라며 차트를 집어 던지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환자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가르쳐줘도 제대로 하는 것이 없네. 바보 아냐”라며 인격모독까지 일삼았다. 오죽하면 한 환자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나를 봐서라도 그만 좀 하라”고 만류할 정도였지만, A씨의 횡포는 그치지 않았다.
2개월의 교육이 끝나고 ‘독립’을 했지만 A씨의 지적은 계속됐다. 실수로 주사액 용량을 잘못 적으면 A씨는 “환자의 목숨이 달린 문제”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교육이 아닌 명백한 언어폭력이었지만, 간호사 세계에서는 ‘환자생명’이 달려있는 문제라는 설명이면 모든 것을 용서 받았다. 낮아진 자존감에 병동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나쁜 마음까지 들었고 결국 ‘살기 위해서는 이곳을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입사 1년 만에 사표를 낸 뒤 마음의 상처를 회복한 그는 지금의 병원으로 이직했고 어느새 8년차 중견 간호사가 됐다. 대학병원보다 규모도 작고 급여도 낮아졌지만 C씨는 이곳에서 비로소 간호사로서의 행복을 느끼게 됐다고 전했다. 이 병원에는 인격모독적인 ‘태움’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선배 간호사가 된 그는 후배들의 잘못을 지적하더라도 ‘인격모독’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는다고 했다. “인력이 아무리 충분해도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결코 바꿀 수 없습니다. 그래야 태움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습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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