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한국 배드민턴계는 ‘신동’의 등장에 술렁였다. 여자단식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한 여중 3학년생은 현역 국가대표와 성인부, 고교 선수 7명을 모두 눕혔다. 순위 결정전 없이 중학생이 국가대표로 선발된 건 한국 배드민턴 사상 처음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난해 12월. 안세영(17ㆍ광주체고)은 두 번째 나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다시 9전 전승을 거뒀다. 그냥 이긴 것도 아니다. 전주이(화순군청)에게만 한 세트를 내줬을 뿐 모두 2-0 완승을 거두는 괴력을 과시했다.
지난 21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난 안세영의 첫 마디는 “기분 좋다”였다. 주변의 관심에 부담을 가지기 시작할 법도 하지만 여고 2년생에겐 그저 ‘흥미로운 유명세’였다.
안세영이 처음 라켓을 잡은 건 배드민턴 동호인인 부모를 따라 나선 광주 풍암초등학교 1학년 때. “어렸을 땐 좀 뚱뚱해서 건강도 생각할 겸 시작했는데 재미를 붙였다”는 그가 두각을 나타낸 건 초등학교 5학년인 2013년부터다. 그 해 열린 원천 요넥스코리아주니어오픈 여자단식에서 우승을 거둔 뒤 2017년까지 5년간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국내외 주니어 무대를 평정한 안세영은 지난해에는 일반부까지 참가한 국제대회(아일랜드배드민턴인터내셔널시리즈)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돌풍’이 아님을 증명했다. 안세영은 “중학생 때에 비해 힘이 좀 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그는 “전엔 뛰어다니기만 했다면 지금은 언니들하고 힘으로 붙어도 밀리는 볼이 거의 없다. 헤어핀 같은 것도 받아넘기기 급급했는데 지금은 짧게 넘기려고도 해 본다”고 설명했다. 정성헌 국가대표팀 코치는 “일단 어린 나이답게 투지가 좋고 승부욕이 대단하다”면서 “기술적인 면에서도 벌써 언니들을 능가하기에 이런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안세영은 훈련이 끝나면 평범한 여고생으로 돌아간다. 광주체고 소속이지만 진천에 입촌해 있기 때문에 수업일수를 채우기 위해 인근 충북체고를 다니며 휴식일엔 ‘운동화 쇼핑’을 즐기는 게 유일한 낙이다. 나머지는 선수촌에 ‘갇혀’ 오전부터 새벽까지 쉴새 없는 훈련의 연속이지만 안세영은 “언니들과 대화도 많이 하면서 재미있게 지낸다”면서 “무엇보다 식당밥도 맛있다. 좋아하는 분식류가 자주 나온다”며 해맑게 웃었다.
한국 배드민턴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동메달 1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노메달’ 등 초유의 침체기를 맞고 있다. 여자단식의 올림픽 금메달은 1996년 애틀랜타 대회 방수현이 마지막이다. 혜성처럼 나타난 안세영의 존재에 대한배드민턴협회 관계자는 “‘방수현, 성지현을 능가하는 독보적인 에이스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안세영은 “올림픽에 나가는 게 목표다. 자만하지 않고, 다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늘 겸손해라. 힘들어도 조금만 더 참고 해 보자”는 부모의 말을 가슴에 새기고 도쿄 하늘에 태극기를 펄럭일 날을 꿈꾸고 있다.
진천=성환희 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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