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이 죽은 줄 몰랐네. 복동이가 간 줄 몰랐어.“
29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92) 할머니는 전날 별세한 김복동 할머니 소식에 한동안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이 할머니는 경기 광주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 ‘나눔의 집’에 살고 있다. 나눔의 집엔 이 할머니 외에도 5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이 살고 있다. 나눔의 집 봉사자들은 평균 연령이 93.2세에 이르는 할머니들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김 할머니 별세 소식을 곧바로 알리지 못했다.
뒤늦게 별세 소식을 접한 이 할머니는 “(서울 종로구 옛 일본 대사관 앞)수요집회에서 복동이를 만났는데 몸은 떨어져 살았어도 마음은 늘 하나였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끝까지 싸워달라”는 김 할머니의 유언을 전하자, 이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는 눈 편히 감고 잘 가길 빈다. 마지막 투쟁은 우리가 하겠다”고 힘 줘 말했다.
나눔의 집 할머니들은 정의기억연대가 27년째 열고 있는 수요집회에 동참해 한 목소리를 내왔다. 2010년 8월 광복 65주년 기념 세계연대집회, 2016년 1월 한ㆍ일 일본군 위안부합의 반대집회에서도 할머니들은 함께였다. 김 할머니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수요집회에 나서지 못하게 되자, 이 할머니는 지난해 10월에만 세 차례나 수요집회에 참석했다. 김 할머니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이 할머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 두 사람이 데모를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가 모두 사망하기 전에 사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설령 우리가 다 떠난다고 해도 후대를 위해서라도 일본은 꼭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와 수요집회에 동참해 온 강일출(91) 할머니도 “오늘 아침에도 김 할머니를 떠올렸다”며 “살아있을 때 가봤어야 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강 할머니는 “역사 문제를 토론할 때 김 할머니와 뜻이 잘 맞았다”면서 “어떻게 하면 후손들이 다시 일본에게 당하지 않을까 함께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일본과의 역사 문제는 우리가 가장 잘 안다며 늘 발 벗고 나섰던 김 할머니가 잘 모르는 후세들만 남겨두고 가버렸다”면서 연신 눈물을 흘렸다.
위안부 할머니 중 최고령인 103세 정복수 할머니와 박옥선(95), 하수임(89) 할머니는 대화가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어 있었다.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증언할 수 있는 분도 몇 분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240명으로 생존자는 23명뿐이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91.0세다.
나눔의 집에서 가장 건강한 편인 동명이인인 이옥선(89) 할머니는 “김 할머니가 매번 집회에 나선 것은 일본의 사죄를 받기 위해서였는데 살아있을 때 받았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며 “저승에 가서라도 꼭 사죄를 받으라고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의 외침은 “돈이 아니라 사죄”, 하나였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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