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시기 대표적인 항일지사인 면암 최익현이 일제에 의해 쓰시마로 끌려가는 과정을 담은 그림이 문화재 반열에 올랐다.
충남도가 30일 충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고시했다고 밝힌 ‘최익현 압송도’는 1910~1930년대 면암 추모사업에 따라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가로 120.5㎝, 세로 63.3㎝ 크기의 기록화이다. 채용신의 작품인 이 그림은 면암이 일제에 의해 서울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다시 쓰시마로 압송되는과정을 자세히 담고 있다. 압송도 등장 인물들이 면암집에 수록된 인물과 연계돼 역사적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조선시대 기록화 제작 방식을 현대화, 구성 방식이 흥미로운 작품이다.
충남도는 압송도와 함께 채용신의 작품인 최익현 초상도 충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고시했다. 1910~1930년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초상은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면암의 풍모를 적절히 형상화한 작품으로 꼽힌다.
최익현 압송도와 초상은 모두 충남 청양군 대치면 백제문화체험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1833년 경기 포천에서 출생한 면암은 사헌부 지평, 사간원 정언, 이조정랑 등을 지냈다. 면암은 재정파탄을 부른 흥선대원권의 실정을 상소해 관직을 삭탈당하고, 친일매국노 처단을 요구하며 일제에 저항했다.
면암은 1898년 궁내부 특진관에 이어 중추원의관, 의정부 찬정, 경기도관찰사 등에 임명됐으나 모두 사퇴한 뒤 1900년 경주 최씨 본가가 있는 청양으로 낙향해 후진교육에 진력했다. 면암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에 저항해 74세의 고령으로 임병찬 등과 함께 전북 태인에서 의병을 규합, 4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순창에서 관군 및 일본군과 맞섰으나 패퇴해 체포됐다. 쓰시마로 유배된 면암은 단식으로 최후까지 저항하다 1906년 11월 17일 순국했다. 정부는 1962년 면암에게 건국훈장 대민한국장을 추서했다.
양승조 충남지사는 “독립운동가이자 구한말 대표적인 문인인 면암 선생의 유물을 문화재로 지정한 것은 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이준호 기자 junhol@hankooki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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