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판 CES(소비자가전박람회)’를 표방하며 10여일만에 급조해 ‘졸속 추진’ 논란이 일었던 한국 전자IT산업융합전시회가 2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막했다.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 참가했던 국내 기업 300여곳 중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 4곳을 포함한 35개 기업이 부스를 열고 첨단 기술을 소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현장을 방문했고, 예상보다 많은 시민들이 전시관을 찾아 우려했던 ‘개점휴업’ 사태는 없었지만 기업들은 “부족한 시간과 인프라 때문에 볼거리를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아직 귀국하지 못한 제품도…준비 시간 부족 아쉬워”
이날 대기업 4곳이 차린 부스는 CES와 비교해 허술해진 구성이 눈에 띄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LG전자의 ‘롤러블(돌돌 말리는) TV’는 단 한 대 전시됐는데 평범한 흰색 배경만 덧대어져 있어 밋밋해 보였다. 전시관 입구에서부터 10개의 롤러블 TV가 화려한 디스플레이를 배경으로 설치돼 전세계 글로벌 기업 관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CES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부스의 한쪽 공간은 이미 시판 중인 ‘LG 오브제’ 가전으로 채워졌다. LG전자 관계자는 “전시용으로 만든 롤러블TV 20여대 중 대다수는 현재 해외 전시 때문에 CES 이후 한국에 들어오지 못했다”면서 “만족스러운 상태로 전시를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다만 롤러블 TV가 국내에서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라 실물을 접한 관람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대학생 김동현(25)씨는 “롤러블 TV에 관한 기사와 동영상을 접하긴 했지만, 실제로 가까이서 보니 더 신기하다”면서 “직접 와서 보길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장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큰 관심을 보인 로봇 ‘앰비덱스’ 등을 전시한 네이버도 촉박한 준비 시간 때문에 CES를 완벽하게 재현하지는 못했다. CES에서는 퀄컴과 협력해 세계 최초로 5세대(G) 무선통신으로 앰비덱스를 제어했지만, 이날 전시에선 충분한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아 유선으로 로봇을 제어해야 했다. 자연히 앰비덱스가 보여줄 수 있는 ‘장기자랑’도 CES에 비해 종류가 적었다. CES에서 주목 받았던 자율주행 로봇 ‘어라운드G’는 전원이 꺼진 채 전시됐다. 부스 공사가 하루 전 급히 마무리된 데다 공간이 협소해 자율주행을 위한 공간의 ‘맵핑’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삼성전자가 CES에서 처음 공개한 로봇 중 건강 관리용 로봇 ‘삼성봇’은 아예 전시되지 않았고, 전시된 웨어러블 로봇 3종도 실제 착용해볼 수 있었던 CES와 달리 눈으로만 봐야 했다.
30여곳의 스타트업들도 CES와 비교해 주목도가 높아지긴 했지만 불만이 적잖았다. 시간이 부족해 부스 벽에 아무런 설명이나 로고를 붙이지 못한 업체도 있었고, 전시 제품 종류를 줄여야 한 기업도 있었다. 자율주행을 위한 센서 기술인 ‘라이다’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카내비컴은 CES에서 10개 부스 규모에 4가지 종류 라이다 제품을 전시했지만, 한국에선 작은 부스 1곳에 한 개 제품만 전시했다. 카내비컴 관계자는 “우리 제품 대부분은 배에 실려 한국으로 오는 중”이라며 “정부가 준비 시간을 충분히 줬다면 더 잘 준비할 수 있었을 것이고, 참가하겠다는 기업도 훨씬 많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평일 낮 전시…직장인에겐 ‘그림의 떡’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혁신 기술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만져볼 수 있다는 점을 큰 매력으로 꼽았다. 방학 중인 초등학생 두 자녀와 함께 전시장을 찾은 윤석하(52)씨는 “평소 전자제품에 관심이 많았는데, 실제로 보니 신기해 이것저것 묻게 되더라”면서 “삼성전자 부스에 갔을 때 디스플레이 ‘더월’을 보고 아이들이 신기한지 눈을 못 떼더라”며 웃었다. 중학생 한모(14)양은 “네이버 부스에서 직접 로봇을 만져보고, 개발자의 설명을 들을 수 있어 흥미로웠다”면서 “평소 로봇에 관심이 많은데 진로 선택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홍보 부족과 전시 기간은 아쉬운 점으로 지적됐다. 일반 관람객 대상 전시임에도 화~목요일 오후 6시까지만 전시해 직장인들은 관람하기 쉽지 않다. 직장인 이종현(31)씨는 “아무리 관심이 많아도 일반 직장인이 갈 수 없는 시간대”라며 “주말에 전시를 하지 않는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IT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별로 득 될 것이 없는 행사”라면서도 “이왕 보여주려면 100% 보여주면 좋았을 텐데 졸속으로 진행돼 아쉬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전시에 참가한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국내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좋은 취지로 시작된 만큼 시간을 충분히 주고 의사결정 과정에 기업들을 함께 포함시킨다면 매년 개최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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