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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 벽’ 갇혀 고립 자초한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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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파 벽’ 갇혀 고립 자초한 민주노총

입력
2019.01.29 18:42
수정
2019.01.29 22:46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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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사노위 참여 무산, 1998년 이후 고질병… 정파 문제로 흘러 강경파 득세 되풀이 

지난 28일 오후 서울 강서구 KBS아레나홀에서 열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 참석한 대의원들이 경사노위 참여 안건에 의사 표시를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지난 28일 오후 서울 강서구 KBS아레나홀에서 열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 참석한 대의원들이 경사노위 참여 안건에 의사 표시를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민주노총은 28일 대의원대회에서 자정 넘게까지 마라톤 회의를 하고도 결국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 여부에 대해 뚜렷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 참여를 두고 내홍을 겪은 것은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임시 대의원 대회에서도 난맥상 끝에 정족수 미달로 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고, 1998년과 2005년에도 사회적 대화 참여 여부를 두고 극심한 내부 갈등을 겪은 전례가 있다.

여론의 기대와 달리 사회적 대화 기구 참여 문제만 맞닥뜨리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민주노총의 행태가 결과적으로 사회적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과거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거나 또는 참여하려 할 때마다 조직이 분열 위기에 처했던 역사적 경험을 감안하더라도, 급변하는 노동 환경이 민주노총에 대한 인내심을 바닥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대화와 타협이 없이는 지키기 어려운 나머지 90% 미조직 노동자의 근로조건은 여전히 열악하며, 민주노총 산하 주력기업 내 노조 활동이 세계 최고 수준인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기업 근로자 간 격차를 더 벌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이 갈수록 민주노총에 등을 돌리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노총은 처음 노동운동이 태동한 19세기 노동조합과 같은 비타협적 투쟁주의를 여전히 고수하면서 사용자는 파트너가 아닌 적으로, 정부는 견인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면서 “그러면서 기존 근로자의 일자리 지키기에만 급급하고 다음 세대 일자리는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비타협적 투쟁주의를 고수하는 것이 현 상황에서 맞는지 민주노총 스스로 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적 대화에 선뜻 참여하지 못하는 맥락은 이해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미조직,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을 위해 민주노총이 해야 할 역할이 분명히 있다”면서 “사회적 대화는 교섭의 또 다른 장이기 때문에 조금 더 전향적인 결정을 내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물론 전문가 다수는 민주노총이 과거 사회적 대화 참여 국면에서 정부로부터 양보를 강요 받았던 트라우마를 이런 난맥상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민주노총 집행부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2월 경사노위의 전신인 노사정위원회에 들어가 환란 수습 명목으로 정리해고와 파견제 허용에 합의를 해줬다가 내부적인 반발에 부딪혀 결국 사퇴했다. 새 집행부는 이듬해 노사정위에서 탈퇴했다. 정리해고와 파견법은 지금도 노사 갈등의 주된 원인 중 하나다. 이후 한동안 사회적 대화와 거리를 뒀던 민주노총은 2005년 3월 온건파인 이수호 당시 위원장 주도로 노사정위 참여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안건으로 다뤘다. 그러자 사회적 대화에 반대하는 강경파가 안건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단상을 점거하고 회의장에 소화기와 시너를 뿌리는 등 극단적인 행동을 했고, 사회적 대화 참여는 무산됐다.

사회적 대화는 진보진영 특유의 정파적 대립을 자극하는 의제이기도 하다. 사회적 대화에 대한 찬반은 타협 노선이냐, 투쟁 노선이냐를 가르는 기준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대화 참여가 이처럼 정파 문제로 흐르다 보면 실리보다는 명분이 앞에 놓일 때가 많다. 경사노위 참여에 따른 유불리만 냉정히 따지기 어려운 여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명분이 앞서는 환경에서는 단순 명쾌한 강경파가 협상파를 압도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협상파에는 ‘비겁, 유약, 어용’ 등의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박지순 교수는 “명분 싸움이 되면 군중심리가 작동해 타협보다는 강경ㆍ투쟁 논리가 득세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된다”고 풀이했다. 28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도 사회적 대화 반대파는 적극적으로 선전전을 폈지만, 찬성파는 숨을 죽였다.

민주노총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 역시 사회적 대화 참여 의사결정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민주노총을 구성하는 각 산별노조와 지역본부, 그리고 정파들이 각자의 지분을 갖고 목소리를 내다 보니 지도부의 재량이 적은 편이다. 이런 민주노총의 구조를 두고 부족장들이 만장일치로 찬성을 해야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신라시대 화백회의’에 빗대는 주장이 있을 정도다.

민주노총은 2014년부터 간선제였던 위원장 선거를 직선제로 전환하며 형식적으로는 지도부에 힘을 실어줬지만, 여전히 지도부 권한은 미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직선제 2기인 김명환 위원장 등은 지난 2017년 위원장 선거에서 사회적 대화 참여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지만, 여전히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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