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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할머니 “선녀들이 가마 가지고 나를 데리고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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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할머니 “선녀들이 가마 가지고 나를 데리고 갈 거야”

입력
2019.01.29 18:10
수정
2019.01.29 21:0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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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작가 증언 소설에 남긴 마지막 육성

2015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에 참석한 인권활동가 김복동 할머니.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5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에 참석한 인권활동가 김복동 할머니. 한국일보 자료사진

“어느 날 동네 구장하고 반장이 우리 집을 찾아왔어. 누런 옷 입은 일본 사람을 데리고. (…) 엄마는 내가 어려서 괜찮을 줄 알았어. 그때 내 나이가 열 다섯 살. (…) 엄마가 끝까지 거절을 못 했어. 그래도 엄마를 원망할 수가 없어. 딸을 내놓지 않으면 배급이 끊기니까 (…) 떠나던 날, 엄마가 1원짜리 돈을 꾸깃꾸깃 뭉쳐 내 치마 안주머니에 넣어 주었어. 벌어지지 않게 바늘로 주머니 입구를 기워 주었어. 일본 가서 배고프면 뭐라도 사 먹어라. 이 돈 떨어지면 집에 연락해라.”

김숨(44) 작가의 소설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 보는 거야’(2018)에 담긴 김복동 할머니의 육성이다. 김 작가가 지난해 김 할머니를 20여번 만나 받아 적은 이야기를 증언록처럼, 산문시처럼 정리했다. 흔들리는 기억을 붙잡으며 김 할머니가 구술한 문장들은 그가 글로 남긴 마지막 인사가 됐다.

김 할머니의 기억은 그 날들로 자꾸만 돌아간다. “군인들이 트럭을 타고 왔어. 군인을 하루에 열다섯 명 정도 받았어. 토요일, 일요일에는 50명 넘게 받았어. (…) 나뭇잎들과 가지들 사이로 총알이 날아왔어. 여자 하나가 몸에 총알을 맞고 쓰러졌어. 죽어 오도 가도 못하는 여자를 그 자리에 묻어주었어. 새들이 숨어서 울었어.”

김 할머니는 62세 되던 해에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고백했다. ‘나’는 찾았지만, 모두 그를 떠났다. “큰언니는 발을 끊고. 나는 큰언니가 벗고 간 블라우스를 입고. 꿈에 언니들도 간혹 나와. (…) 언니들이 나를 보고 달아나.” ‘호랑이’라 불릴 만큼 무뚝뚝했던 김 할머니는 끝내 사랑을 그리워한다.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담아 본 적 없어, 일생을…… 37년을 내 옆에 그림자처럼 있었던 사람에게도 그 말을 안 했어, 못 했어. 끝까지, 사랑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어. 못 견디게 보고 싶은 게 뭐야? 죽을 만큼 보고 싶은 게. 사랑은 내게 그 냄새도 맡아 본 적 없는 과일이야. 빛깔도 본 적 없는.”

지난해 김 할머니는 암과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시력을 잃은 지도 오래였다. “내 눈이 흰빛 덩어리가 되어가고 있대. 만인의 눈을 밝히는 빛이 되라고, 내 눈이 흰빛 덩어리가 되어가고 있나 봐. 죽음은 두렵지 않아, 죄를 지을까 두렵지. 나 갈 때… 잘 가라고 손이나 흔들어줘…선녀들이 가마 가지고 와서 나를 데리고 갈 거야. 무지개 타고 천상으로 올라갈 거야. 그냥 화장해 산에 가서 날려줘. (…) 바람 불 때 훨훨 날려줘…”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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