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주관 왕실 개입 드러나자 폴 케이시 “참가 않을 것” 선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상 최초로 유러피언투어 골프 대회가 개최된다.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대거 출전하는 가운데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죽음과 관련해 선수들이 대회를 보이콧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유러피언투어 공식 대회인 사우디 인터내셔널이 유럽골프 31일(현지시간)부터 4일 동안 사우디아라비아 킹압둘라의 로열 그린 컨트리클럽에서 그 막을 올린다. 사우디 인터내셔널은 지난해 3월 키스 펠리 유러피언투어 CEO가 사우디아라비아와 3년 간의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하며 신설된 대회다. 당시 펠리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비롯한 사우디 왕실에 감사하다”며 “유럽프로골프를 사우디에 최초로 소개하는 첫걸음을 뗀 것에 굉장히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개최가 결정된 뒤 대회 조직위원회는 사우디 왕실의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아 정상급 선수들을 끌어 모았다. 미국프로골프(PGA)와 달리 유러피언투어는 출전 선수들에게 초청료 지급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미국 골프전문매체 골프다이제스트에 따르면 타이거 우즈(미국)는 출전 대가로 300만달러(약 33억원)를 제안 받기도 했다.
중동의 막대한 오일 머니를 앞세운 조직위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대회 출전 선수 명단에는 세계 랭킹 톱5 가운데 4명, 5명의 메이저 대회 챔피언, 라이더컵에서 뛴 6명 등이 포함되며 초호화 진용을 갖추게 됐다.
현 세계 랭킹 1위이자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골프 금메달리스트인 저스틴 로즈(잉글랜드)를 비롯해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 헨릭 스텐손(스웨덴) 등이 출사표를 던졌다. 미국 선수로는 세계 랭킹 3위 더스틴 존슨과 지난해 마스터스 챔피언 패트릭 리드가 초대 대회 우승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지만 명단 발표 직후 터키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영사관에서 살해당한 반정부 망명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사건에 사우디 왕실이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상황은 반전됐다. 참가를 약속했던 선수들이 사건을 계기로 불참 선언을 할 우려가 나왔고, 현실이 됐다.
지난해 9년 만에 PGA 투어 대회 우승을 차지한 폴 케이시(잉글랜드)는 지난주 공식 성명을 통해 “사우디 인터내셔널에 참가하지 않을 것임을 확실히 한다”며 “언론 보도와 달리 출전 계약을 맺은 적이 없다”고 기존 출전 의사를 뒤집었다.
논란을 더 키운 것은 미국 골프전문방송 골프채널의 해설자 브랜들 챔블리였다. 챔블리는 지난 27일 미국 방송사 NBC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케이시의 선택을 칭찬하고 싶다”며 “경제적 인센티브 때문에 인권이 억압 당하는 장소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여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선수들에게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이어 “(사우디 인터내셔널에) 참여하면 사우디의 체제와 왕족들의 범죄를 인정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날을 세웠다.
반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정치적 논란에 관계 없이 경기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저스틴 로즈는 27일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기자회견에서 “나는 정치인이 아닌 프로골프 선수”라며 논란에 상관 없이 좋은 환경에서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다며 참가 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더스틴 존슨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직업이 골프 선수이고 이미 초청료를 받았기 때문에 대회에 그대로 참가한다”고 밝혔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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