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 속칭 ‘명동 사채왕’ 일당의 조작 때문에 마약 범죄자로 몰려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던 사업가의 재심이 29일 열렸다. ‘사채왕’ 최진호씨를 비롯한 증인들이 재심 법정에 설 예정이고, 뇌물을 받고 사건 정보를 건넨 최민호 전 판사 사건도 이 재판에서 다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 최진곤 판사는 이날 마약소지죄(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신모(60)씨 재심 첫 공판을 열었다. 2017년 1월 서울중앙지법이 “판결을 그대로 둘 수 없을 정도로 증거가 명백하다”며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린 데 이어, 지난해 11월 대법원이 재심 개시를 확정하면서 사건 발생 17년 만에 다시 재판이 열린 것이다.
이날 재판부는 검찰이 신청한 사채왕 최씨 등 4명을 증인으로 채택, 4월 2일 증인신문을 열어 과거 판결의 타당성을 구체적으로 따져보기로 했다. 신씨는 재심에서 최 전 판사가 자신의 재판에 개입한 정황, 경찰의 사건 조작 의혹까지 적극 따져보겠다는 입장이다.
신씨는 당시 사건에 대해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한 인물들이 마약 봉지를 내 주머니에 몰래 넣어두고 바로 와서 체포하라고 사전에 경찰과 모의했다”며 마약을 소지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2001년 12월 신씨는 사기도박에 속아 날린 돈 7억원을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방배동 한 다방을 찾았다가 최씨 일당과 몸싸움을 벌였다. 그 틈에 일당 중 한 명인 정모(68)씨가 마약 봉지를 몰래 신씨 호주머니에 넣었고, 때마침 경찰이 들이닥쳐 신씨는 긴급체포된 뒤 마약 소지 혐의로 구속됐다. 3개월간 구치소에 수감된 신씨는 2002년 6월 1심에서 벌금 700만원을 선고받고 항소를 포기했다.
사건 발생 7년 뒤 사건 조작에 가담했던 정씨가 검찰에서 당시 마약 조작극이라고 털어놓았지만, 사채왕 최씨는 2010년 10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고 빠져 나갔다. 이후 한국일보의 보도(2014년 4월 8일자)로 사채왕 최씨가 최 전 판사에게 2억6,864만원을 주며 수사 진행상황을 전달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최 전 판사는 2015년 1월 알선수재 혐의로 검찰에 긴급체포됐고, 다음해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사채왕 최씨는 조세포탈 등 혐의로 기소돼 2016년 대법원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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