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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해진 헝가리 체코... 트럼프의 러시아 봉쇄정책 균열 조짐

입력
2019.02.06 15:06
수정
2019.02.06 18:54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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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AP 연합뉴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AP 연합뉴스

호시탐탐 유럽을 노리는 러시아에 맞선 미국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동유럽의 선봉 헝가리와 체코가 주판알을 두드리며 제 밥그릇을 챙기는데 여념이 없는 탓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불신을 자초하며 우방국의 대열 이탈을 부추기면서, 냉전을 승리로 이끌며 위력을 발휘했던 미국의 봉쇄정책에 구멍이 날 조짐이다.

헝가리와 체코는 1999년 폴란드와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에 뒤늦게 가입했다. 그러나 서방의 군사ㆍ안보 지원의 확연히 엇갈렸다. 폴란드에는 4,000명 규모의 미군 여단과 영국군 전투기 전력이 배치됐지만 헝가리와 체코에는 상시 주둔병력이 없다. 나토와 훈련을 실시할 때마다 미군이 잠시 다녀갈 뿐이다.

그 사이 러시아는 서부군관부 전력을 크게 보강했다.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 병합 이후 유럽의 동쪽 벨트를 강화해온 미국에 맞선 조치다. 자연히 헝가리와 체코는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서 자신들의 안보에 민감할 수 없게 됐으며, 그 결과 내린 결론은 어정쩡한 등거리 정책으로 굳어지고 있다.

실제로 우파 성향의 헝가리 정부는 최근 미국과의 외교ㆍ안보 협력에 소극적이다. 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지난해 말 미국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헝가리는 오스트리아 같은 중립국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더 이상 간섭하지 말라는 얘기다.

오르반 총리의 반응은 중국의 사이버 스파이 활동에 맞서 미국 헝가리에 강력한 조치를 요구하자 그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폴란드가 화웨이 간부를 체포하고 우크라이나도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도, 오르반 총리는 정반대 길을 택했다. 헝가리 인터넷 인프라 사업에 중국의 투자를 요청하면서, 나토가 추진하는 우크라이나와의 각료급 대화에 제동을 걸며 재를 뿌렸다. 물론 그렇다고 나토를 탈퇴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미국의 의도대로 러시아, 중국의 공세를 차단할 최전선의 총알받이 역할은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한 측근은 “총리가 원하는 것은 러시아와의 거래”라며 본심을 숨기지 않았다.

헝가리의 대응은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서 탈퇴하면서 미러 양국 간 대결의 볼모가 된 것과도 무관치 않다. 동맹을 무시한 채 시리아에 이어 아프간에서도 일방적으로 철수하려는 미국을 지켜보며 불안감이 가중된 것이다. 헝가리가 삐딱하게 나온다면 자칫 동쪽의 안보벨트가 흐트러지고 이로 인해 유럽은 유사시 러시아의 선제공격에 반격할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할 우려가 있지만, 온전히 미국에 의존하는 건 더 위험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은 “러시아는 최근 헝가리, 체코 정도까지만 날아가는 탄도탄과 순항미사일 전력을 몇 배로 늘렸다”며 “까딱 잘못하면 가장 먼저 얻어터지는데 트럼프가 제대로 도와줄지 믿음이 가지 않으니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미국은 2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헝가리에 보내 설득에 나설 방침이지만 오르반 총리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헝가리와 함께 러시아의 길목을 차단할 동유럽의 군사요충지 체코도 미국을 향한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현대화된 군사시설을 건설해주겠다는 미국의 제안에 여론이 양분돼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상태다. 1968년 ‘프라하의 봄’ 당시 구 소련군의 무참한 진압을 기억한다면, 오히려 반미 여론이 커진 셈이다.

체코 의회 국방위 관계자는 러시아 언론 스푸트니크에 “미 국방부가 체코에 레이더 장비를 설치하지 못하게 된다면 곳곳에 소규모로 군사기지를 짓거나 도로를 확충해 군사용도로 사용할 것”이라며 “다리와 도로, 철로를 보수해준다는데 반대할 국민이 어디 있겠느냐”고 전망했다. 체코 공군은 불과 14대의 초음속 전투기를 운용해 군사력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미국이 대놓고 대형 군사시설을 배치할 여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 관료는 WSJ에 “헝가리뿐만 아니라 체코와 슬로바키아도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점점 더 중립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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