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본 2차대전 독일 전차병 에이스 오토 카리우스의 말년의 고백, 즉 자신이 전선을 지킨 이유가 우선은 군법 때문이었고, 고통과 추위와 배고픔 때문에 넋이 나간 뒤로는 공포와 살고자 하는 본능 때문이었다는 고백은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소외인지를 뭉클하게 말해 준다. 숨진 전우의 복수 등 즉발적 분노의 힘으로, 혹은 비겁자가 되지 않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 이들이 많았을까, 전몰추모탑이나 기념행사장의 정치인이 말하듯 자유와 정의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이 많았을까.
찰스 글래스(Charles Glass)라는 논픽션 작가는 훈장을 탄 전쟁 영웅들이 아닌 2차대전 탈영병들을 인터뷰해 그들이 겪은 전쟁의 이면을 밝힌 ‘탈영병들의 숨겨진 역사(The Deserters: A Hidden History of World War Ⅱ)’(2013)란 책을 썼다. 책에는 1944년 말 유럽 전선의 19세 탈영병으로 재판을 받은 뒤 정신병동에 수감됐다 풀려난 87세 베테랑의 사연이 소개돼 있다. 독일군 포격으로 함께 있던 전우 30여명이 그 자리에서 갈가리 찢겨 전사한 이야기, 배고픔과 추위와 절망…. 그는 몇몇 전우들과 탈영했다가 다시 부대로 복귀한 뒤 재판에 회부됐다. 그는 “전투를 경험한 적도 없는 이들이 진행한 그 재판이 웃기고 남의 일 같았다”고 말했다. “모든 걸 놓아버린 터여서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마음이었다. 모든 게 한 편의 익살극 같았다. 어서 끝내고 그들이 나를 죽여 주기를 바랐다”
저자는 베트남전쟁 베테랑들과 달리 2차대전의 그들을 위대한 세대라 부르는 것, 다시 말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세대란 평가가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알리고 싶었다고 썼다.
2차대전 중 영국군과 미군 약 15만명이 탈영했다. 미군은 그들 중 147명을 사형(전후 6명 포함)시켰다. 그들 모두 탈영 외에 전우 및 민간인 살인과 강간 등 다수 범죄 피의자였다. 단 한 명,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출신의 에디 슬로빅(Eddie Slovik, 1920~1945)은 단순 탈영으로 전시 군사법원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45년 1월 31일 총살당했다. 절도 등 전과로 징병 대상에서 빠졌다가 전황이 다급해진 44년 1월, 결혼 1년 차에 징집된 그는 전장에서 죽는 것보다 몇 년 옥살이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지만, 당시 군수뇌부는 일벌백계로 탈영을 막고자 했다. 최윤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