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지주가 자회사이자 국내 3위 정유업체인 현대오일뱅크의 지분 일부를 에쓰오일(국내 4위 정유업체) 최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업체 아람코에 매각한다. 최대 1조8,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게 돼 재무구조 개선에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현대중공업지주는 28일 이사회를 열어 현대오일뱅크 지분을 아람코에 넘기는 상장 전 지분매각(Pre-IPO)에 관한 투자계약서에 대해 논의했다. 현재 현대오일뱅크의 지분 91.13%를 보유한 현대중공업지주는 이번 계약이 성사되면 아람코에 최대 19.9%까지 지분을 매각하게 된다. 아람코는 현대오일뱅크의 시가총액을 10조원으로 산정, 주당가치를 3만6,000원 안팎으로 평가해 지분 인수를 추진한다. 현대중공업지주 관계자는 “정확한 지분 매각 규모는 이르면 다음 달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중공업 지주에서 추진하는 재무구조 개선과 신사업 투자에 필요한 금액 상당부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조선업황 부진으로 부채비율이 상승하자 계열사인 하이투자증권을 매각하는 등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벌여왔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현대중공업지주의 차입금은 2조5,000억원이다.
당초 현대중공업지주는 재원 확보를 위해 지난해 현대오일뱅크 기업공개(IPO)를 추진했다. 그러나 현대오일뱅크가 글로벌석유회사 쉘과 합작해 만든 현대쉘베이스오일의 회계 처리 문제 등으로 상장이 지연됐고, 국제유가까지 떨어지면서 상장에 성공해도 제 값을 받기 어려워지자 차선책을 택한 것이다. 이번 상장 전 지분매각은 아람코의 제안으로 성사됐다. 현대중공업지주 관계자는 “아람코의 투자계약서 이사회 의결과 본 계약 체결 등 상장 전 지분매각 절차를 진행하면서 국제유가 추이 등을 보고 현대오일뱅크의 IPO 일정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다만 올해 안에 IPO를 끝내긴 어렵다”고 말했다.
현대오일뱅크의 2대 주주에 오르게 될 아람코는 세계 원유생산량의 15%를 공급하는 세계 최대 석유회사이다. 현대오일뱅크의 업계 최고 설비 고도화율(40.6%)과 수익성 등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해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도화율은 전체 원유 정제 설비에서 고도화 설비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고도화율이 높을수록 배럴당 정제 마진도 높아져 이익을 더 많이 낼 수 있다.
다만 아람코가 투자한다고 해서 사우디아라비아 원유 수입량이 늘어나진 않는다. 현대오일뱅크 관계자는 “현재 공장 설비가 중동ㆍ남미에서 나는 중질원유에 맞춰져 있어 사우디아라비아의 중경질 원유와는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에쓰오일은 자사 지분의 63.41%를 갖고 있는 아람코에서 원유를 들여오고 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