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ㆍ타로 점집 찾는 1030
경기 용인시에 거주하는 고등학교 3학년 이강민(18)군은 이달 20일 친구들과 함께 서울 마포구 홍대거리에 놀러 갔다가 한 사주ㆍ타로 점집을 찾았다. 대학 합격자 발표를 앞두고 점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결과를 미리 알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 같았기 때문이다. 점집에는 이군 말고도 또래들이 줄지어 상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점집 한쪽에는 ‘학생 1만원’이라는 맞춤형 가격표도 붙어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사주를 보고 나온 이군은 “내가 지원한 대학 4곳 중에 그래도 1곳은 합격할 것이란 점괘가 나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라며 “친구들도 ‘고3’이라는 불안감 때문인지 인터넷 운세나 타로 점 등을 많이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서모(38)씨는 서점에서 우연히 강헌 경기문화재단 대표가 쓴 명리학 책을 접하고는 사주에 관심을 갖게 됐다. 명리학은 사람이 태어난 해와 달, 날, 시를 간지로 계산해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학문으로 사주학이라고도 불린다. 그는 인터넷과 유튜브를 통해 사주를 공부하다가 부족함을 느껴 전문가를 찾아가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또래들과 스터디 모임도 만들었다.
서씨는 “20대 때는 열심히 하기만 하면 원하는 대로 될 거라 생각하고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30대가 되니 노력의 차이로만 주변과 내 위치 간극이 벌어진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사주를 공부해보니 삶의 유연함이 생기고 불확실하고 두려운 미래에 대한 막연함을 극복하는데 도움도 된다”고 말했다.
때론 가볍게 때론 진지하게 사주나 타로 등 점(占)을 찾는 1030세대들이 늘고 있다. 기성세대들이 소문 난 용한 점집을 찾아 앞날을 물어봤다면 젊은 세대들은 접근이 쉬운 온라인이나 모바일 운세 콘텐츠, 사주ㆍ타로 카페를 주로 찾는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 미아리 점성가촌을 비롯해 신내림을 받은 무속인 등 전통적인 점집들이 쇠퇴하는 반면 스마트폰 운세 애플리케이션이나 시내 번화가 사주ㆍ타로카페 등이 운세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점점 키워나가고 있는 이유다.
인천 부평역 지하상가에서 철학관을 운영하는 한혜주(63)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지하상가 안에 있는 사주ㆍ타로 점집은 3곳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10곳에 이른다”라며 “지상(상가)까지 포함하면 이 근처에만 몇 곳이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인천 남동구 구월동 한 사주ㆍ타로 점집 관계자도 “예전에는 운세를 보려면 한적한 곳에 있는 점집에 가서 비교적 비싼 돈을 지불해야 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을 통해 무료로 보거나 가까운 점집을 찾아 5,000~1만원만 내면 된다”라고 말했다.
접근성이 높아진 것 외에 대입과 취업, 결혼, 출산 등 미래에 대한 고민과 불안감이 커지는 것도 점집 문을 두드리는 1030세대들이 늘어나는 이유로 꼽히고 있다. 운세사업은 보험과 함께 대표적으로 불안 심리를 이용하는 상품으로 알려져 있다.
평소 지인들 사주를 자주 봐준다는 서씨는 “주변 사람들을 잘 이해하기 위해 사주를 봐주고는 하는데, 사주에 관심이 없거나 믿지 않는다는 사람도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어서인지 막상 시작하면 구체적으로 질문해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이 지난해 1월 공개한 ‘운세 보시나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에 참여한 1030세대 10명 중 9명이 운세를 본 경험이 있었다. 운세를 보는 이유 는 ‘미래가 불안해 위안을 얻으려고’가 22.9%로, ‘막연한 호기심에(42.7%)’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결혼, 이사 등을 할 때 손 없는 날을 꼽거나 오늘의 운세나 신년 운세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허용적인 문화, 이에 반해 정신과 치료나 심리 상담 등을 꺼리는 오해와 편견 등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점집을 찾은 1030세대들은 주로 무슨 문제를 털어놓을까.
철학관을 연지 7, 8년 됐다는 한씨는 “40~50대들은 부부 문제, 자식들 결혼이나 취업, 사업 등이 어떻게 될지 많이 묻는 반면 젊은 세대들은 대부분 남자친구가 생길지 등 이성 문제 아니면 취업 문제 둘 중에 하나”라며 “고민거리는 세월이 가도 크게 변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헀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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