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36.5º]비핵화, 팽이 말고 맷돌을 돌려라

입력
2019.01.28 19:00
30면
0 0
집권 이후 중국을 네 번째로 찾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주석과 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집권 이후 중국을 네 번째로 찾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주석과 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들 모르던데요,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최근 만난 국책연구기관 전문가의 푸념이다. 왜 남북한과 미국의 3자 구도로 한반도 이슈를 다루게 됐는지 누구도 속 시원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그토록 운전자를 갈망했는데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었다. 중국을 제쳐두면 한국의 몫이 늘어나 좋을 텐데 말이다. 지난해 판문점, 싱가포르, 평양에서 남북미 정상들이 만난 것만으로도 8부 능선을 넘은 듯 보였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다. 비핵화 프로세스에 제대로 시동을 걸지도 못했다. 당연시하던 종전선언은 가물가물하다. 급기야 민망함을 무릅쓰고 ‘스몰 딜’을 전리품으로 챙기려는 판이다. 미 본토를 겨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대북 제재를 맞바꾼단다. 핵 동결 수준에 그친다면 비핵화와 평화체제는 한낱 몽상일 뿐이다. 북미가 차 밖으로 나가 성에 차지 않는 담판을 벌이는 통에 운전대는 헛돌고 있다. 지난 1년간 분주하게 돌아간 비핵화 시계는 제자리를 맴돈 팽이와 다를 바 없었다.

팽이치기에서 밀린 중국은 무대 아래에 똬리를 틀었다. ‘남북미 혹은 남북미중 회담을 추진한다’는 판문점 선언과 달리 서울에서 평양을 거쳐 워싱턴으로 가는 동안 베이징은 줄곧 건너 뛰었다. 오로지 밥상머리에 북한을 잡아두는데 신경을 썼다. 훈수꾼 중국에게 자리를 내주기 껄끄러웠나 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THAADㆍ사드) 사태를 겪으면서 정나미가 떨어진 터라 마주앉기가 영 불편했던 모양이다.

중국을 링 밖으로 밀쳐낸 건 패착이었다. 후련함도 잠시, 고질적인 한미일 대 북중러 간 3각 대립구도가 갈수록 굳어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결정적 순간마다 보란 듯 국경 너머로 달려가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품에 안겼다. 작전타임이 빈번해지면서 경기에 개입하려는 중국의 그림자는 더 짙어졌다. 반면 우리는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아 바퀴의 한 축이 너덜해진 상태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협상”을 강조했다. 남북미에 더해 중국이 참여하는 4자 회담을 열자는 것이다. 북미가 물꼬를 트고 한국이 가세해 결실을 맺으려던 3자 구상은 틀어졌다. 까칠한 사공이 하나 늘어난 4자 구도로 바뀌면서 이제 정부는 어느 쪽으로 노를 저어야 할지 헷갈릴 지경이다.

사실 4자 회담은 낯설지 않다. 20년 전인 1997~99년 정전협정 당사자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뚜껑을 열어보니 한미와 북중이 편을 갈라 맞붙었다. 한반도 평화는커녕 주한미군 철수를 비롯한 선전구호만 남았다.

정부는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새로운 해법으로 4자 회담을 검토했다. 6자 회담은 이미 10년째 용도 폐기된 터였다. 드디어 한반도 문제의 당사국이 한데 모여 창고 한 켠에 방치돼 있던 맷돌을 제대로 돌리는가 싶었다. 대선 직전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미국을 향해 “북중미 3자 회담도 가능하다”고 한국의 뒤통수를 친 것을 감안하면 더 이상 미룰 형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정부는 끝내 카드를 꺼내지 않았다. 남북관계가 풀리고 북미가 마주앉자 중국은 성가신 존재에 불과했다. 올해 수교 70주년을 맞아 찰떡궁합을 과시할 북한과 중국을 서로 떼놓는 것 자체가 무리였지만, 웬일인지 나팔수로 나선 북한을 상대하는데 그쳤다. 둘을 함께 링 위에 올려 밑천이 드러나도록 몰아붙여도 모자랄 판에 팽이 끈을 움켜쥔 중국이 뒤에서 북한을 흔들도록 놔뒀다.

그 사이 미국과 북한은 신나게 팽이를 돌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눈엣가시 중국이 빠지니 홀가분했고, 김 위원장은 미국과 일대일로 맞서면서 기세를 올렸다. 반면 우리는 두 변덕쟁이의 입만 바라보며 냉가슴을 앓았다. 주중대사가 한달 가까이 자리를 비워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착각하는 현실은 차라리 코미디에 가깝다. 이제 팽이는 접고 묵직한 맷돌의 손잡이를 중국에도 내줘야 하지 않을까.

김광수 국제부 차장 rolling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