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국에서 가장 ‘핫’한 배우(?)는 허베이(河北)성 장자커우(張家口)의 작은 농촌마을 주민 리위바오(李玉寶ㆍ57)씨다. 그는 지난 17일 공개된 영화 ‘페파피그의 새해맞이’의 홍보영상에서 세 살짜리 손자에게 페이치(佩奇ㆍ페파피그의 중국 명칭)를 선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할아버지로 등장한다.
홍보영상에서 페파피그를 전혀 모르는 리씨는 마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페이치가 뭐냐”고 묻다가 어렵사리 힌트를 얻은 뒤 손수 만든 페파피그를 손자에게 선물한다. 영상에는 페파피그가 분홍색 돼지라는 사실을 안 리씨가 새끼돼지에게 붉은색 페인트를 칠하려다 실패하는 해프닝도 나오고, 며칠 밤을 새워 가며 금속 송풍기를 용접해 페파피그를 만드는 감동적인 장면도 나온다. 홍보영상은 공개 첫날에만 1억뷰 가까운 조회 수를 기록했을 만큼 폭발적인 인기다.
사실 리씨는 지금껏 연기라고는 해본 적도 없는 평범한 농부였다. 실제로 그는 우연한 계기로 제작진의 눈에 띄어 홍보영상 제작에 동참했고, 영상 속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페파피그가 뭔지도 몰랐다. 그런 리씨가 이제는 인터넷 스타가 됐고 홍보영상에 함께 출연한 마을 주민들도 중국 매체들의 인터뷰 단골 손님이 됐다. 한적하던 시골마을은 외지 관광객을 맞느라 분주하다.
2001년 첫선을 보인 영국 애니메이션 ‘페파피그’가 중국에 소개된 건 2011년 동영상 플랫폼 유쿠를 통해서다. 이후 중국에선 가히 ‘페파피그 신드롬’이라 할 만큼 분홍돼지 열풍이 불고 있다. 현재까지 유쿠에서 누적 조회 수는 150억뷰를 넘어섰고 어린이 애니메이션 인기 순위에선 수년째 톱3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2010년대에 출생한 중국 어린이를 두고 ‘페이치 세대’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한국으로 치면 ‘뽀로로’에 버금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보영상 감독을 맡은 장다펑(張大鵬)은 한 인터뷰에서 제작에 참여한 이유를 “페파피그 애니메이션의 광팬인 아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았다”는 말로 설명했다.
그렇다고 페파피그에 대한 열광이 어린이들에게만 국한된 건 아니다.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선 페파피그 문신을 하거나 페파피그 캐릭터가 인쇄된 티셔츠를 입는 게 유행이다. 페파피그 캐릭터 시계를 차고 있는 이들도 많다. 이들은 스스로를 비주류 젊은이라는 의미의 ‘사회인’으로 부른다. 중국 사회의 통제 시스템을 감안하면 사실상 젊은세대가 기존 주류세대에 저항하는 문화적 아이콘의 하나로 페파피그를 선택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한때 인터넷상에서 페파피그의 동영상 방영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는 얼마 가지 않아 흐지부지됐다. 지난해 10월 상하이(上海)에선 세계 최초의 페파피그 테마놀이공원이 문을 열었고 연일 어린이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일부 젊은층이 페파피그를 저항문화의 한 축으로 활용할 가능성에 대한 중국 정부의 우려보다는, 페파피그에 대한 중국 어린이들의 절대사랑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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