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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입력
2019.01.27 19: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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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이미지 뱅크
게티 이미지 뱅크

지난 18일 국회에서 진행된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는 앞으로 정치권이 전개할 책임공방의 전초전 같았다. 꼭 필요하지만 ‘가능하면 내 정당이 안 하는 게 가장 좋은’ 연금개혁을 얘기하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말 정부가 내놓은 국민연금 개편안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던 이날의 회의록을 들여다보니, 시작하기 무섭게 신경전이 벌어졌다. 야당에선 정부가 ‘사지선다형’ 개편안을 내놓고 국회에 무책임하게 공을 던졌다며(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자 여당에선 10년 전부터 재정건전성에 대한 경고가 있었지만 아무 조치를 안 했던 보수정당이 무책임하게 폭탄 돌리기를 한 건 아니냐고 맞받았다(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워낙 폭발성이 강한 주제라 회의 시작 전부터 “정치적으로 누가 책임을 질 것이냐”를 정하자고 맞선 것이다.

볼썽사납긴 했지만 한편으로 정치인들의 이런 행태가 이해되지 않은 건 아니다.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연금 등 복지제도가 정착해 국민적 신뢰가 뿌리내린 상황에서 개혁할 수 있었던 서구와 우리의 사정은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겨우 연금제도에 대한 신뢰가 쌓이는 시점(국민연금 도입 31년)에 저성장기를 맞았고 여기에 고령화라는 시한폭탄이 던져진 상황에서 개혁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국민연금 수급개시 연령을 올린 1차 개혁(1998년),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대폭 깎았던 2차 개혁(2007년) 때보다도 더 피하고 싶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1998년 6%에서 9%로 인상된 뒤 20년 넘게 손대지 못했던 보험료율 인상 논의다.

연금개혁을 논의하는 또다른 트랙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국민연금개혁과 노후소득보장 특별위원회)도 요즘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특위는 노후소득 보장, 연금 재정건전성 확보, 연금 사각지대 해소라는 3대(大)주제를 논의한 후 4월까지 합의안을 내는 게 목표지만 핵심 쟁점인 보험료 인상여부를 놓고 벌써 대치가 팽팽하다는 후문이다. 노동계는 노후소득보장 강화를 전제로 보험료 인상을 검토할만하다는 생각이지만, 경영계는 보험료 인상은 절대 불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주제를 한사코 피하고 싶은 정치권은, 특위의 합의안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입법 논의를 하겠다고 책임을 떠넘긴 듯한 모양이지만 특위 내 합의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양대 정당이 번갈아 집권해 온 우리 정치 구도를 보건대 연금개혁은,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상대의 배신 가능성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와 같은 상황이다. 양대 정당의 지지 기반인 노동계와 경영계가 모두 보험료 인상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상황에서 어느 한 쪽이 섣불리 나섰다가는 독박을 쓰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2007년 2차 연금개혁 당시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대담하게도 보험료 13% 인상안을 들고 나왔지만,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은 동결을 요구했고, 한나라당은 심지어 보험료 인하(7%)를 주장, 결국 유야무야된 전례도 있다(연금개혁 때문만은 아니지만 참여정부는 결국 정권을 잃었다).

한 가지 기대하는 지점은 이번 정부 남은 임기 내 올해만 유일하게 선거가 없는 해라는 점이다. 각 정당들이 그나마 지지층의 반발을 무릅쓰고 정치적 합의를 시도해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인 셈이다.

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정치인에게, 표를 잃더라도 전체에 이익이 되는 선택을 하라는 이야기는 현실 모르는 주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파적 이익에 매몰돼 공방만 벌이기에는 상황이 한가하지 않다. 2025년이면 우리나라는 인구 10명 중 2명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를 맞는다. 연금개혁 등 복지제도의 재정건전성ㆍ지속가능성 문제를 풀지 못하고 고령화사회에 접어들 경우 국가적 패닉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건 전문가들의 일치된 진단이다. 누군가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

이왕구 정책사회부장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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