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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 연애금지령에 집 나간 고3 외아들… 인생 망가질까 두려워요

입력
2019.01.28 04:4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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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일러스트=김경진 기자
일러스트=김경진 기자

저는 올해 고3인 외동 아들을 키우는 엄마예요. 아들은 어릴 때 착하고 고분고분한 아이였어요. 잘생긴데다 영특한 편이어서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을 듬뿍 받았지요. 공부도 곧잘 하고 하나밖에 없는 아이라 중학교 때 학업을 위해서 서울 강남으로 전학을 시켰습니다. 자식 하나만 잘되기만을 바라는 마음에 저를 위해서는 한 푼 안 쓰고 강남으로 이사했어요. 그뿐 인가요. 인스턴트 음식은 먹이지도 않았고,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아낌없이 해줬어요. 그랬는데도 아이가 중학교 들어가더니 게임으로 속을 썩이더군요. 너무 게임에 빠지는 것 같아서 몇 번 혼을 냈더니 거짓말도 하더라고요. 집 밖으로 쫓아낸 적도 있어요. 한동안은 아들이 울면서 고치겠다고 얘기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진 않았어요. 성적도 상위권을 유지했고요.

아들이 강남 자율형사립고에 들어가면서 게임보다 더 큰 문제가 생겼어요. 저 몰래 스마트폰을 사서 여자친구와 밤늦게까지 메시지를 주고 받더라고요. ‘왜 거짓말을 했냐’고 닦달하니까 ‘여자친구와 메시지를 주고 받지 않으면 공부가 안 된다’며 봐 달라고 하더라고요. 여자친구와 헤어지라고 하면 공부를 하지 않을 것 같아서 일단은 알았다고 했어요. 그런데 아들은 새벽에 한 두 시간만 메시지를 주고 받기로 해놓고 밤새도록 잠도 안 자고 메시지를 주고 받고 있더군요. 심지어 둘이 동거를 하자는 둥, 집을 나가겠다는 둥, 엄마가 의심병 환자 같다는 등의 대화를 나눈 걸 보고 배신감이 치밀었어요. 화가 나서 휴대폰을 집어 던지면서 ‘고3이 정신도 못 차리고 한심하게 여자친구와 놀고 있냐’고 아이에게 퍼부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들은 집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열흘이 넘도록 집에 들어오질 않고 있어요. 성적은 금세 중위권으로 떨어졌고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아이에게 제 심정을 담아서 메시지를 보냈더니 ‘공부 못하는 애를 무시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고, 자기를 무시하는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답장이 왔어요. 괘씸한 생각에 저도 답장을 하지 않았어요. 얼마 전에 가출청소년 보호센터에서 연락이 왔어요. 아이가 센터에는 ‘공부 때문에 힘들었고, 센터에서 지내면서 학교도 다니고 수능도 보겠다’고 했다고 해요. 집에 데리고 와야 하나 싶은데 아이가 원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용서를 구하고 집에 데리고 와서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 줘야 하나 싶다가도 자신이 없어집니다. 고3인 아이가 여자친구와 메시지만 주고 받고 공부하지 않는 모습을 제가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요. 남편은 아이를 그냥 두라고 해요. 하지만 제 모든 것을 헌신해 키운 아들이 이렇게 망가지는 것을 보고 있을 수가 없네요.

박선혜(가명ㆍ47ㆍ회사원)


선혜씨, 아들처럼 곧 성인이 되는 아이들에게 부모는 어떤 존재여야 할까요. 어린 아이들처럼 의식주를 제공해 주고, 보호해 줘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청소년기, 성인기를 앞둔 아이들에게 부모는 의논과 대화의 대상이 돼줘야 해요. 가령 성적이 떨어지거나 진로 여부를 고민할 때 부모와 대화를 하고 의논을 해야 하죠. 마음이 힘들거나 불안할 때 부모가 이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함께 상의를 해줄 수 있지요.

물론 공부를 안 하는 고3 아들에게 잔소리 안 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선혜씨가 아들을 염려하는 마음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혜씨가 아들을 걱정하는 것과 아들이 그런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에요. 특히 지금 아들은 엄마가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큽니다. 아들은 말이 통하지 않는 엄마가 답답하다 못해 터져 버릴 것 같은 심정일 겁니다. 폭발할 것처럼 힘들고 괴로워 잘못될 것만 같은 불안함에 가출했을 거에요. 너무 화가 나고 답답해서 엄마에게 분노를 퍼부을까 혹은 넘어선 안 되는 선을 넘을까 두려워하며 피한 거지요. 아들은 엄마가 자신의 힘든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꼈을 거에요. 성적이 생각보다 잘 안 나와서, 혹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를 상황에 부딪혔을 때 아들은 말이 잘 안 통하는 엄마보다 여자친구한테 의지했을 거에요. 여자친구가 이성이라기보다 자기와 대화하고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거에요. 그런데 엄마는 그것을 연애질로 폄하하고, 이를 야단치고 화를 내니 답답한 마음에 뛰쳐나간 게 아닐까 생각해요. 아들은 엄마가 자기를 진정 걱정해준다고 못 느꼈을 거에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면 아들이 왜 이토록 힘들어졌는지 생각해볼게요. 제가 보기에 선혜씨의 아들은 굉장히 올곧은 아이에요. 누구보다 자기의 인생을 스스로 잘 살아내고 싶어해요. 가출하고도 학교에 간다는 것은 학교를 제대로 다니고 싶은 마음이 있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모범생이고, 스스로 공부를 잘해야 하는, 기준이 매우 높은 아이처럼 보여요. 성적을 잘 받는 것으로 자존감을 채웠을 거에요. 이런 아이들은 보통 성적이 떨어지면 아무도 뭐라고 안 해도 스스로 괴로워하는 성향을 보여요. ‘성적이 떨어졌네, 더 열심히 해야지’라고 생각하지 않고, ‘성적이 왜 떨어졌지, 다시 못 오르는 것 아닐까’하면서 불안해합니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열심히 하기보다 뒤로 나동그라지고 맙니다. 성적이 떨어져서 누구보다 괴로워 올라갈 힘을 잃고 말죠. 자의식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그 기준을 못 맞췄을 때는 너무 고통스러워합니다. 선혜씨의 아들은 똑똑해서 그 동안은 공부를 잘하는 성취도로 자기 불안을 낮추고 자기 자신을 유지시켜 왔을 거에요. 그런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니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고 있어요.

이런 아들의 불안과 괴로움을 선혜씨가 알아채야 합니다. 공부를 안 한다는 것만 가지고 닦달하지 말고, 그 이면에 있는 아이의 고통을 알아채고 보듬어주어야 합니다. 아무리 사랑으로 잘되라는 마음으로 하는 얘기였다고 해도 힘든 아들에게는 오히려 ‘엄마가 나의 고통을 정말 모르는구나’라는 좌절감만 안겨줬을 가능성이 크지요. 당신의 걱정이 아들에게는 크나큰 부담으로 다가왔을 거에요.

선혜씨, ‘아이를 진정으로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아이가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까요’와 같은 고민에서부터 시작해야 아들과의 관계가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홧김에 집을 나갔거나 문제를 일으키기 위해서 집을 나갔더라면 아들을 돌아오게 해야겠지만, 지금 선혜씨의 아들은 엄마와 잠시 떨어져 숨통을 트고 싶은 걸 거에요.

지금 아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마음’이에요. 아들이 ‘엄마가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아는구나’라고 생각할 때 비로소 엄마에게 다가올 수 있어요. 선혜씨가 아들에게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세요. 아들이 좋은 성적을 받아서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인가요? 그보다 아들이 마음 편하게 행복하게 느끼면서 살 수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닐까요? 선혜씨는 ‘잘되는 것=공부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거에요. 그런데 그것만이 진정한 아들의 행복은 아닐 거에요. 아들도 누구보다 엄마의 마음을 읽고 공부를 열심히 해왔는데, 공부를 잘못할 때 그걸 버텨낼 힘을 기르지 못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네 마음 편한 게 제일이야’, ‘마음이 편한 게 가장 행복한 일이야’라고 알려줬더라면 아들은 조금 덜 힘들어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라도 아들의 마음을 깊게 들여다보세요. 아들을 너무 사랑하지만 아들을 닦달하는 것은 사실 선혜씨 안에 잠재돼 있는 불안일지도 모릅니다. 그 불안 때문에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이지요. 아들이 여자친구와 연락하는 것을 연애질이라고 치부해버리고, 그 사실에만 집중하면 아들이 진정 원하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너무 힘든 아들에게 ‘너는 네 미래가 걱정도 안되니’라고 닦달하게 되고, 그럴수록 아이는 외롭고 힘겹겠지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선혜씨, 아이가 학교를 안 가고, 성적이 떨어지는 일은 매우 염려스러울 순 있지만, 그보다 아이의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지 먼저 떠올려보세요. 아이의 진정한 행복은 편안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안해지게 도와주는 부모가 아닐까요. 선혜씨의 잘못이 아니라, 아이의 성장과 부모의 역할을 좀 더 넓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적이 떨어졌을 때 ‘너 어떡하려고 그래, 인생 망칠 거야’라고 하기보다 ‘성적이 좋든 나쁘든,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이 편안하게 지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라는 믿음과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당장 아들을 집으로 데려오는 것은 관계에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습니다. 다만 아들에게 ‘너는 소중한 내 아들이고, 네 마음이 편안한 쪽으로 지내길 바란다. 네가 많이 힘들텐데 꿋꿋하게 학교에 잘 다녀줘서 고맙다’라는 말은 꼭 전하시길 바랍니다. 아들이 좀더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옷이나 생활용품을 갖다 주고, 용돈도 입금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좋은 성적을 받아서 좋은 대학에 가고 성공하는 것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아이의 마음이 다치지 않고 건강하고 편안한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사실을 엄마가 아들에게 알려주었으면 좋겠네요.

정리=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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