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 두 대통령’ 사태에 놓인 베네수엘라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과 ‘셀프 임시 대통령’을 선언한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다시 한 번 충돌했다. 마두로 대통령의 대화 제의에 과이도 의장은 거부 의사를 밝히고 길거리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합법적인 국가수반 자리를 두고 베네수엘라 내 권력 투쟁이 계속되면서, 이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좌우 진영 간 대립도 지속될 전망이다.
마두로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수도 카라카스의 대통령궁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베네수엘라의 국가수반 자리를 놓고 과이도 의장과 만날 준비가 돼 있다"라며 대화를 촉구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 주요 외신은 보도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나는 가야 할 곳에 갈 준비가 돼 있다. 내가 발가벗은 채로 이 젊은 남자(과이도 의장)를 만나야 한다면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이도 의장의 임시 대통령 선언은 워싱턴(미국)이 지원한 필사적인 행위"라며 "미국이 자국 외교관들의 철수 명령을 완전히 준수하기를 희망한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23일 열린 대규모 반정부 집회에서 과이도 의장이 스스로 과도 정부의 임시 대통령을 선언하고 미국이 즉각 인정하자, 마두로 대통령은 미국과의 단교를 선언하고 72시간 내로 외교관들의 철수를 명령한 바 있다. 일부 미 외교관들과 가족들은 미국으로 출국한 상태다.
이어 맞서 과이도 의장은 같은 시간 카라카스 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마두로 대통령의 대화 제의를 “가짜 대화”라며 거부했다. 임시 대통령을 선언한 지 이틀 만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는 “그들은 억압을 통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 대신 가짜 대화를 제안한다”면서 “나는 세계와 이 정권에 분명히 밝힐 것이다.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가짜 대화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이도 의장은 구금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면서 “설사 그들이 나를 체포하려 든다고 해도, 여러분은 굴복하지 말고 길거리로 나와 계속 투쟁해달라”라고 지지자들에 호소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한편 베네수엘라 사태를 두고 국제사회는 양분된 상태다. 미국과 유럽연합, 브라질 등 남미 우파 국가들은 과이도 임시 대통령을, 러시아와 중국, 멕시코 등 남미 좌파 국가들은 마두로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좌우 신냉전 대립구도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로이터 통신은 25일 러시아 크렘린궁과 연계된 민간 용병들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위기에 몰린 마두로 대통령의 신변 보호를 위해 베네수엘라로 파견됐다고 보도했다. 앞선 24일 미국은 2000만달러(약224억200만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 의사를 밝히며 과이도 의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마두로 정부의 자금줄인 베네수엘라 원유 금수 제재가 가능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양쪽 진영의 신경전은 26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미국이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을 압박하기 위한 국제 여론전에 나서면서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안보리 회의에 참석해, 베네수엘라 국민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지지 입장을 강조하고 과이도 의장을 합법적 수반으로 인정해달라고 촉구할 예정이다. 그러나 러시아 측은 안보리 회의에서 미국의 이 같은 주장에 반대할 방침이라 충돌이 예상된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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