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미쓰비시와 법정 투쟁
태평양전쟁 당시 군수공장에 강제 동원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의 손해배상을 위한 법정 투쟁 산증인인 김중곤씨가 25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1차 소송 원고인 김씨는 보름 전 병상에서도 “미쓰비시의 사죄와 배상을 받기까지는 절대로 죽지 않겠다”고 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고인은 1944년 6월 15세의 어린 나이에 일본 나고야 미쓰비시 항공기제작소에 강제 동원됐다가 그해 12월 17일 발생한 도난카이(東南海) 지진 때 무너진 건물에 깔려 숨진 고(故) 김순례씨의 오빠다. 그가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의 사망 소식을 접한 건 광복 직후였다. 여동생과 함께 근로정신대에 끌려갔던 친구 고(故) 김복례씨가 집으로 찾아와 “나만 살아 돌아와 면목이 없다”고 오열하며 불귀의 객이 된 친구의 죽음을 전했다. 고인은 이를 계기로 김복례씨와 결혼했다.
고인은 1988년 옛 미쓰비시 공장 터에 세워진 도난카이 대지진 추모비 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나고야를 찾았다가 양심적인 일본인들과 만나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피해구제를 위한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1999년 3월 1일 나고야소송지원회와 함께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나고야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고 10년간 법정 투쟁을 이어갔지만 2008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끝내 패소하고 말았다. 그 사이 2001년 2월 아내 김씨를 하늘로 떠나 보내야 하는 아픔도 겪었다.
일본에서 근로정신대 희생자들에 대한 사법 구제의 길은 막혔지만, 그의 활동은 그치지 않았다. 그는 여동생과 아내의 명예회복을 위해 2012년 국내 소송에 참여했고, 마침내 지난해 11월 29일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의 사죄와 배상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본에선 2008년 나고야소송지원회 활동가 야마카와 슈헤이씨가 고인의 일대기를 담은 전기 ‘인간의 채(砦ㆍ요새)’를 펴냈다. 이 책은 조만간 국내에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아들 용현(73)씨 등 2남 1녀. 빈소는 울산 굿모닝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27일 오전, 장지는 울산하늘공원이다. (062)365-0815
광주=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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