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실이 위험하다]<중>강력한 해외 매트리스 난연 규정
4분 8초.
라텍스 침대 매트리스에 불을 붙였더니 플래시오버(flashoverㆍ화재가 급격히 확산돼 방 전체에 불꽃이 도는 현상)에 이르는 데 걸린 시간이다. 반면 불에 잘 타지 않는 난연(難燃) 소재로 만든 매트리스의 경우 1분 만에 불씨가 사그라지더니 20분 후 그을음만 남긴 채 저절로 꺼졌다. 라텍스뿐 아니라 스프링, 메모리폼으로 만든 매트리스 역시 각각 4분 38초, 7분 11초 만에 불길이 치솟아올라 강제 진화해야 했다.
한국화재보험협회 부설 방재시험연구원과 시몬스침대가 시중에서 판매되는 매트리스를 대상으로 화재 실물 실험을 진행한 결과다. 국제표준화기구(ISO) 기준(KS F ISO 12949ㆍ이른바 ‘버너 시험법’)에 따라, 불이 붙으면 가장 빨리 타는 매트리스 상단과 측면을 버너로 70초와 50초씩 동시 가열해 화재 안전성을 평가하는 방법이다.
미국과 캐나다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이 같은 시험을 통과한 난연 매트리스만 시중에 판매할 수 있다. 가정 특히 침실에서 불이 났을 때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매트리스에 일찌감치 주목한 결과다.
해외에서도 처음부터 엄격한 매트리스 난연 규정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미국도 오랫동안 현재 우리나라에서 적용하는 이른바 ‘담뱃불 시험법’으로 매트리스의 화재 안전성을 측정했다. 그러나 소방당국 등으로부터 매트리스의 화재 위험성 문제 제기가 잇따르자 2007년부터 버너 시험법을 도입했다. 이 시험에서 정한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매트리스는 미국 내 판매뿐 아니라 수입까지 금지하고 있다. ISO는 2011년 미국의 버너 시험법을 국제 표준으로 정했다.
이뿐 아니라 미국은 요양소나 구치소, 조산소 등의 매트리스까지 방염(防焰) 대상으로 정해 관리ㆍ감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철저히 사각지대다. 지난해 1월 46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남 밀양세종병원 화재 때도 병실의 매트리스와 이불, 커튼이 불씨 확산 매개체가 되고, 유독가스를 뿜어내 참사의 한 원인으로 지목됐지만 여전히 매트리스는 소방시설법이 정하는 방염 대상에서 빠져있다.
영국을 포함한 유럽연합(EU)도 매트리스에 대해 엄격한 난연 기준을 갖고 있다. 영국은 1988년부터 매트리스를 포함한 주거시설에서 사용하는 모든 가구류에 방염화를 의무화하는 법령(FFRs)을 시행 중이다. 실제 이 법이 제정된 이후(2002~2007년) 실내 가구로 인한 화재 발생 비율과 사망률이 제정 이전(1981~1985년)보다 각각 37%포인트, 64%포인트 줄었다.
EU는 영국의 주도로 1980년 회원국내 상품 안전규정(GPSR)을 만들면서 매트리스에 대한 난연성 기준(BS 7177)을 마련했다. 학교, 병원, 요양소 등 사용환경의 화재위험성에 따라 4단계로 분류된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데 제조업자뿐 아니라 유통업자도 이를 의무적으로 따라야 한다.
국내 사정은 크게 뒤떨어진다. 시몬스가 유일하게 매트리스에 난연소재를 사용하고 있고, 일부 업체가 난연펠트를 적용하고 있지만 전 업체에 확산되기는 요원하다. 매트리스는 현행법상 가장 낮은 수준의 규제를 받는 ‘안전기준준수’ 생활용품으로 분류돼 안전성 검증 시험을 하지 않아도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다음달 발간하는 정책보고서는 “매트리스를 최소한 ‘안전확인대상’이나 ‘안전인증대상’으로 분류해 산업통상자원부가 인정하는 기관에서 안전확인시험을 받고 그 결과를 승인받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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