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디 주한인도네시아 대사
LA총영사 시절 현지 印尼人
‘발리 음악ㆍ춤 연습 과정을 촬영
다큐 제작 참여하고 직접 출연
아카데미 심사 후보까지 올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초대받을 뻔 했지요. 제가 제작에 참여하고 직접 출연까지 한 다큐멘터리 영화 ‘발리: 파라다이스의 비트’가 베스트 픽처 부문 심사대상에 올랐거든요. 아쉽게도 최종 후보엔 들지 못했지요.”
어느 영화 감독이나 배우 이야기가 아니다. 우마르 하디(52)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 이야기다.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대사관저에서 만난 하디 대사는 “아카데미 입성엔 실패했지만, 영화를 통해 세계에 인도네시아 문화를 퍼뜨린다는 건 아주 매력적인 일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잘 나가는’ 외교관으로 살았던 하디 대사가 영화에 관심을 가진 전 201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 때의 경험 덕이다. “LA에 200여명 정도 모이는 발리 출신 이민자 커뮤니티가 있어요. 매주 일요일마다 인도네시아 전통 음악 ‘가믈란’을 연주하고 춤추는 모습이 참 인상 깊어서 가족들을 데리고 그 모임에 한 번 나가본 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지요.”
시작은 공연이었다. 매주 연주하고 춤 추면서 연습한 게 아까우니 여러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해보자 했다. 첫 공연은 2017년 3월. 하디 대사는 “소박한 무대였는데도 우리뿐 아니라 LA 시민들 반응이 너무나 좋아서, 이거 통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며 웃었다.
이후 하디 대사는 공연 업그레이드를 시작했다. 발리식 가믈란 음악에다 구두 굽으로 현란한 춤을 선보이는 아일랜드 탭댄스를, 또 재즈를 섞어보기도 했다. 이런 실험은 또 다른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이런저런 연습을 하면서 이걸 영화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했죠. 마침 할리우드에 있던 인도네시아 출신 신예 영화 감독 리비 정에게 제안해서 영화화가 추진됐어요.” 쟁쟁한 거물들을 제치고 마이클 잭슨 추모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해 유명세를 떨쳤던 아시아계 흑인 가수 주디스 힐까지 가세했다. 발리 가믈란 뮤직비디오 촬영과정을 담은 영화 ‘발리: 파라다이스의 비트’의 탄생이었다. 하디 대사는 지난해 11월 오스카 시사회 현장을 떠올리며 “너무 뜨거운 반응이 나와 나 스스로도 무척 흥분됐었다”고 말했다.
하디 대사는 왜 발리를 골랐을까. 그는 “이미 가장 유명한 관광지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도네시아 문화를 안내하는 훌륭한 터미널이 되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발리가 지닌 개방성도 고려 대상이었다. 그는 “발리에는 ‘발리식 힌두교’라는 독특한 종교가 있는데, 그 종교에서 신을 섬기는 방법이 음악과 춤”이라면서 “발리식 힌두교를 믿지 않아도, 발리 사람이 아니어도 누구나 함께 음악과 춤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서부의 보고르 출신인 하디 대사가 ‘발리 전도사’를 자처한 이유이기도 하다.
자국 문화의 힘을 확인한 하디 대사이기에 한국 문화의 힘에도 관심이 많다. 한국 생활 3년 차인 하디 대사는 K팝, 한국 드라마를 물론, 판소리나 가야금 같은 전통 음악도 틈나는 대로 들여다 보고 있다. “지난해 9월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환영만찬에서 인도네시아 민요 ‘벵가완 솔로’가 가야금으로 연주됐어요. 눈물 날 정도로 선율이 아름다웠어요.” 하디 대사의 눈은 다시 반짝거렸다. “인도네시아 가믈란을, K팝 같은 한국 음악과 섞어보는 건 어떨까요.” 영화 ‘발리, 한국의 비트’가 나올 지도 모르겠다.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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