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건물 1층에 설치된 로봇 바리스타 ‘고든’이 만들어 준 아메리카노의 맛은 늘 만족스럽다. 펑크 났던 거래처 미팅 일정도 챗봇이 밤 사이 정리해놨다. 점심에는 요새 맛 집으로 한창 뜬 ‘셰프 3D’의 식당에 갔다. 아이패드로 주문한 피자를 기다리는 동안 스마트폰의 투자 상담 어플리케이션으로 주식을 실시간으로 추천 받았다. 저녁에는 자율주행 로봇이 배달하는 음식 서비스를 이용해 볼 참이다. 인도로 통행할 수 있어 로봇은 차가 많아도 좀처럼 늦지 않아 요새 인기다.’
10년 후 미래를 상상한 게 아니다. ‘지금’ 미국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바리스타, 비서, 요리사, 종업원, 자산관리사, 배달원이 로봇과 소프트웨어로 대체되면서 그 일을 하던 사람들은 직업을 잃었다. 얼마 전 택시기사들이 카카오의 카풀 서비스 도입에 결사 저항하고 나선 것도 일자리를 과학기술에 빼앗길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보통사람들의 전쟁’은 인공지능(AI) 로봇과 빅데이터로 무장한 자동화 시스템에 일자리를 빼앗긴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기계를 상대로 싸울 수도 없고, 맞서 본들 이길 수도 없는 게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면 무엇을 미리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해법을 단도직입적으로 제시한다.
저자 앤드루 양은 창업자와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비영리기업 ‘벤처 포 아메리카’의 설립자였다. 그는 새로운 일자리를 많이 만들기 위해 수년간 미국 주요 도시를 돌아 다녔다.
그가 둘러 본 현실은 암담했다. 효율성을 최고로 떠받드는 기업들은 다루기 까다로운 인간보다는 말 잘 듣는 기계와 소프트웨어로 노동력을 갈아치우기 바빴다. 그가 지원한 스타트업 업체들조차 인간의 일자리를 없애는 방향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 이미 인류는 돌이킬 수 없는 ‘대실업’의 단계에 진입했음을.
보통사람들의 전쟁
앤드루 양 지음. 장용원 옮김
흐름출판 발행•368쪽•1만6,000원
실업은 직종 불문 전방위로 일어나고 있었다. 기계와의 일자리 전쟁에서 육체 노동과 지적 노동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반복적으로 수행되는 일이냐, 아니냐가 관건이다. 화이트칼라라고 안심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 증권거래인, 기자, 정신분석가 등도 대체 가능한 직업군이 됐다. 로봇은 의사를 대신해 일찌감치 임플란트 수술에 성공했고, AI는 변호사처럼 소송장을 찍어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로봇으로 인한 대실업이 영구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산업 혁명과 달리 기술 혁명은 인간이 재교육과 훈련으로 따라 잡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자리의 상실은 인간성의 파괴로 이어진다. 1890년대 철강업 중심지로 이름을 떨치며 미국에서 중간 소득이 가장 높은 도시였던 오하이오주 영스타운의 몰락이 대표 사례다. ‘집을 가진 자들의 도시’로 승승장구하던 영스타운의 비극은 1960년대 철강 산업의 쇠퇴로 제철공장들이 문을 닫으면서 본격화 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피폐해졌고, 공동체는 붕괴됐다. 아동과 배우자 학대와 이혼, 자살, 약물중독이 급증했고, 사회적으로도 부정부패와 범죄가 만연했다.
미국의 쇠퇴한 도시를 쭉 돌아본 저자는 단언한다. 경제적 결핍은 단순한 스트레스를 넘어 사람들을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인 ‘나쁜 결정’으로 몰아넣는다고. 기술의 진보가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은, 전문적 고급 기술도, 기계를 부릴 돈도 없는 ‘보통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그는 경고한다.
이대로 책이 끝났다면 분개했을 지 모른다. 다행히 저자는 명쾌한 해법을 제시한다. 전 국민 보편적 기본소득 도입이다. 실업 여부, 소득과 관계 없이, 성인 남녀(18~64세) 누구에게나 기본소득(미국의 경우 1년에 1만 2,000달러)을 지급해 기존 복지프로그램 대부분을 대체하자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인도, 캐나다, 핀란드에서 정책 실험이 진행 중이고, 미국에서도 양극화 문제를 해소할 대안으로 꾸준히 거론돼 왔다. 알래스카에선 오래 전부터 주민들에게 석유배당금을 주고 있다. 과격한 혁명적 구호가 아니라, 얼마든지 충분히 실행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기본소득 반대론자의 우려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한다. 기본소득이 일 안 하는 베짱이만 양산하는 것 아닐까. 저자는 간신히 먹고 살 돈을 받았다고 해서, 당신 같으면 일을 그만두겠냐고 반문한다. 기본소득이 최저생계를 보장해주면, 사람들의 근로의욕은 높아지고, 소비가 활성화 돼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연간 1조 3,000억 원 정도 소요되는 예산은 부가가치세를 도입하면 해결된다. 미국에선 실업자가 봉사활동을 하면 사회 신용포인트를 지급하는 ‘타임뱅킹’이란 제도도 운영 중이다. 포인트는 농구 경기 관람 등 문화생활을 소비하는 데 쓸 수 있다.
저자의 결론은 간명하다.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는 빼앗아 갈 순 있어도, 인간은 인간다움을 지켜내며 살아야 한다. 기본소득제가 반드시 정답이라고 말할 순 없다. 그러나 최소한의 시작은 될 수 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