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초등교사들 젠더교육연구회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고 자란다.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성 차별과 혐오 표현이 심각한 문제다. 교실에서는 ‘쟨 여자라서 안 돼요. 우리 팀 망해요’ ‘돼지년’ ‘너 장애냐(장애인이냐)?’와 같은 말들이 오간다. 교사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안 돼’ ‘하지마’라고 제지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을까.
‘초등젠더교육연구회(아웃박스)’는 이런 고민에서 시작됐다. 고양시 소재 초등학교 교사 8명이 독서모임에서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책을 읽다가 ‘성 불평등 문제를 교육으로 풀어 보자’고 2017년 연구회로 전환한 게 시작이었다.
황고운 교사는 “아이들이 배울 기회가 없어서 (성 차별과 혐오 표현을) 그냥 하기도 한다”며 “교사가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는 아이들 세계에서도 중요한 의제로 다뤄진다”고 성 평등 교육의 의미를 설명했다.
교사들은 국어, 사회, 체육, 창의적 체험활동 등 다양한 과목의 교과과정을 활용해 학생들에게 성 차별 문제를 생각하도록 했다. 국어 ‘광고 읽기’ 시간에 성 차별적 요소가 있는 광고를 수업 자료로 쓰는 식이다. 연구회가 지난 2년간 교실 현장에 적용해 온 성 평등 수업 사례들은 올해 여성가족부가 발간하는 ‘초중고 성평등 학습교안 사례집’에 포함돼 새 학기 전국 학교에 배포된다.
일상에 깊이 뿌리 내린 성 고정관념을 찾고 이를 아이들과 함께 바꿔보는 방식의 수업이 특히 반응이 좋다고 했다. 이예원 교사는 이를 위해 미디어를 활용한다. “아이들이 많이 보는 유튜브나 만화, 책 속에서 성 고정관념을 찾아 보고 이를 바꾸는 연극을 직접 만들어 보게 하는 거죠. 그러면 아이들이 ‘공주가 왕자를 구하고’ ‘남자 캐릭터도 요리를 하고’ ‘결혼으로 모든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내요.”
교사들 스스로도 성 고정관념을 경계한다. 무거운 것을 들 일이 있으면 ‘남자 애 나와’가 아니라 ‘오늘 컨디션 좋은 사람 나와’라고 말(최다솜 교사)하거나 성별을 기준으로 하지 않는 모둠(김수진 교사)을 만든다. ‘남자 남자 여자’ 또는 ‘여자 여자 여자’ 모둠을 구성하는 식이다. 김수진 교사는 재직 중이던 학교에서 남학생이 항상 1번으로 시작하는 출석 번호에 문제를 제기, 격년으로 남녀의 출석 번호 순서를 바꾸도록 하는 결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아이들은 수업에서 성 차별과 혐오 표현에 대항하는 방법을 직접 만들어 냈다. 황고운 교사 수업에서 아이들은 앞으로 ‘살도 많이 빠지고, 이제 시집가도 되겠네’라는 말을 들으면 ‘내 나이 열두 살, 조선시대 아닙니다’라고 응수하겠다고 했다. ‘남자가 운동을 안 하면 쓰나’라는 말에는 ‘운동을 못하면 좀 어때요’라고 맞서기로 했다. 황 교사는 “‘너 게이냐?’라는 혐오 표현에 ‘하지 마’ 보다는 ‘요즘에 그런 말 누가 써’라는 말로 대응해 그런 표현이 뒤처졌다는 인식을 주는 방법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2년간의 성 평등 교육은 교실에 느리지만 확실한 변화를 가져 왔다. 아이들 입에서 먼저 ‘너 그거 차별이야’라는 말이 튀어나오고 외모 비하가 발단이 되는 사소한 다툼이 줄었다. 김수진 교사는 “유치원 때부터 자신도 모르게 ‘성별’이라는 차이에 얽매여 따로 놀던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놀면서 친구 관계가 확장되고 넓어졌다”고 말했다.
연구회는 성별을 비롯한 어떤 차이도 그 사람을 제약하지 않는 교실과 사회를 꿈꾼다. 정윤식 교사는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누가 어떻든 신경을 안 쓰는 교실이 됐으면 좋겠다”며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학교가 되는 게 연구회의 목표”라고 말했다.
글∙사진=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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