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알 같은 기록으로 결정적 증거
24일 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을 구속 수감시킨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 중 하나는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업무수첩이 꼽힌다.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꼼꼼하게 작성한 ‘안종범 수첩’이 ‘최순실 국정 농단’의 핵심증거였다면, 사법농단 사건에는 ‘이규진 수첩’이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검찰은 전날 이뤄진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에서 이 부장판사의 업무수첩에 ‘큰 대(大)’자가 표시된 부분을 부각시켰다. ‘이규진 수첩’은 2015년부터 3년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 근무했던 이 부장판사가 윗선의 이런저런 지시사항, 또 자신이 보고할 사항을 깨알같이 기록해둔 업무수첩이다. 모두 3권 분량에 이르는 이 수첩에서 ‘큰 대(大)’자는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사항일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2년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65권의 수첩기록으로 남겨둔 ‘안종범 수첩’과 같은 역할이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그런 지시 자체가 없었을 뿐 더러 추후에 대(大)자를 적어 넣는 등 조작 가능성도 있다”고 반박했지만 역효과만 났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수첩에 가필이나 가획을 하면 검증을 통해 쉽게 드러나는데다 이 부장판사가 굳이 그런 조작을 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없다”고 말했다.
‘이규진 수첩’은 재판에서도 증거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안종범 수첩’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심 재판부를 제외하면 모두 증거능력이 인정된 바 있다. 서울고법 한 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이 조작 가능성만 제기한 것도 증거능력을 부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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