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드라마 ‘SKY캐슬’이 종착역을 향하고 있다. 현재로선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상류층의 굳건한 성(城)에 균열이 생기는 모습이다. 3대째 (서울)의대 출신 가문을 만들려는 엄마 한서진과 수험생 딸 강예서는 시험지 유출이라는 최대 난관에 봉착했다. 피라미드의 정상에 서야 한다는 일념으로 자식들을 다그쳤던 검사 출신 차민혁의 욕망은 아내와 아이들의 반발에 위태롭다. 반전이 없다면,예서의 동갑내기 이복 자매인 김혜나를 죽음으로 몰고간 예서의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도 사필귀정의 피날레를 맞을 것이다. 욕망과 위선이 뒤섞인 드라마 속 SKY캐슬은 주제곡 ‘We all lie(우리 모두 거짓말을 한다)’처럼 신기루가 될 터이다.
주제곡은 ‘이게 정말 사실이야?(Is this really true?)’라고 되묻는다. 눈을 돌려 현실의 SKY캐슬을 보면, 사실이 아니라고 하기 어렵다. 꼭 드라마 속 입시 코디 김주영은 아니더라도 강남 대치동 역삼동 학원가를 중심으로 학교 내신 코디(선생)는 일반적이다. 부모가 먼저 코디를 찾는 게 다반사다. 고교에 입학하는 자녀를 둔 부모가 유명 학원을 찾아 “아이 학교 내신반을 열어달라”는 식이다. 앞서 자녀를 명문대에 입학시킨 부모들의 이런 전례가 모범답안처럼 구전돼왔다. 비슷한 성적(혹은 재력)의 아이들 4~6명 정도가 그룹을 이루고 입시를 마칠 때까지 이어진다. 학원은 과거 10여년간 해당 학교의 중간ㆍ기말고사 시험 문제를 입수해 이들의 내신을 관리해준다. 학원비는 보통 1인당 월 350만~400만원이다. 물론 내신만 관리해선 안 된다. 수학능력시험(수능)과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위한 학원 혹은 과외, 입시 컨설팅은 별도다. 최근 모 연예인이 방송에서 “매달 과외비 500만원 들여 딸을 명문대에 합격시켰다”는 말에 강남 학부모 상당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고교생 가족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강남 초등 저학년 학생을 둔 한 어머니의 말이다. “아이가 국어, 수학, 과학, 영어, 수영 학원을 다닌다. 수학과 영어는 학원 2개가 기본이다. 학습지도 한다. 초등 저학년도 월 200만원으론 부족하다는 게 주변 엄마들 얘기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들어가는 돈도 늘어난다. 재벌들은 아이들에게 스트레스 주면서 의사, 법조인 되라고 안 한다. 고용하면 되고 고용할 돈 물려주면 되니까. 우리는 교육이라도 시켜 먹고 살게끔 해주려는 것이다.”
강남 사교육 문제는 우리사회 고질적 병폐의 함축이다. 중산층의 신분상승 혹은 유지 욕망은 그들만의 리그를 고착화한다. 경제적으로 따라오지 못하는 계층과 거리를 둔다. 소득이 많을수록 사교육 참여도가 높다는 점(통계청 2017년 사교육비조사)은 경제 취약계층의 자녀들이 교육경쟁에서 일찌감치 낙오하게 만든다. 이 지역 부동산 가격이 전국 최고 수준인 것도 ‘교육1번지’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계층장벽’과 다름 없다. 교육이 건전한 시민으로서의 자질, 인성, 지식을 키운다는 본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오직 입시와 안정적 수입, 지위 유지의 통로로 변질됐다는 얘기다.
과도한 사교육비, 교육 불평등, 소득 양극화 심화는 우리 모두에게 비극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고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번번이 좌초했다. 힘들게 캐슬에 입성한 사람들은 변화에 저항하고, 입성하지 못한 사람들은 변화시킬 힘이 없기 때문이다. 입시제도 개편만으로는 부질없다. 입시제도가 숱하게 바뀌었지만 그 때마다 학원 의존도는 커졌지 않은가. 여야 정치권부터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대로 5년, 10년, 20년이 지나면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고민해야 한다. 매년 20조원 안팎의 사교육비를 보다 생산적인 곳에 투입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대로라면, 머지 않은 미래 대한민국이 과거 봉건시대 신분제 사회처럼 될지 모른다. 그렇게 될 리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이대혁 경제부 차장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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