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어린이ㆍ청소년 부문 유강희 ‘손바닥 동시’
“말만 까치밥이지~ 박새도 까마귀도~ 참새도 와서 먹는다~.” 강연장에 흥겨운 동요가 흘러나오자 청중들이 고개로 까닥까닥 박자를 탔다. 한 아이는 흥얼흥얼 따라 부르기도 했다. 간결한 노랫말과 멜로디가 귀에 쏙 들어왔다. 모두의 얼굴에 동심이 피어났다.
23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 교보문고 합정점 내 배움홀에서 열린 제59회 한국출판문화상 북콘서트는 ‘동요 콘서트’로 시작했다. 어린이ㆍ청소년 부문 수상작인 유강희 시인의 동시집 ‘손바닥 동시’(창비)에 실린 ‘까치밥’에 작곡가 꿈휴가 멜로디를 붙인 노래다. 전체 100편 중 50편이 동요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강연자로 나선 유 시인은 “손바닥 동시가 노래로 만들어질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며 “언젠가 이 동요들로 콘서트를 열자고 작곡가와 약속했다”고 말했다.
‘손바닥 동시’는 책 제목인 동시에 유 시인이 이름 붙인 새로운 시 장르다. 한국 시조와 일본 하이쿠처럼 문학사에 존재해 온 짧은 시를 현대적으로 계승해 독립된 정형시로 가다듬었다. 시조에서 각 장의 첫 구만을 취한 ‘글자 수 3ㆍ4(1행) 3ㆍ4(2행) 3ㆍ5(3행)’을 기본 형식으로 삼았다. “1920년대 시조부흥운동과 김영랑 시인의 4행시 등 우리에게도 짧은 시 전통이 있었는데 뿌리내리지 못했어요. 평소 짧은 시를 좋아했던 터라 늘 아쉬웠어요. 그러다 2006년 중국해양대학에서 1년간 한국어를 가르치게 됐어요. 중국에 머무는 동안 짧은 시 형식을 실험해 봐야겠다 마음먹고 절박한 심정으로 창작에 매진했어요.” 그렇게 1년간 쓴 시가 노트 3권 분량이 넘는다.
이름이 왜 ‘손바닥 동시’일까. 유 시인은 “바닷가를 거닐면서 떠오른 시어들을 메모지도 없이 손바닥에 끄적거렸다”며 “그래서 손바닥 동시가 됐다”고 웃음지었다.
손바닥 동시는 제목을 가리고 읽으면 더 재미있게 다가온다. ‘웅덩이가 / 날개를 / 편다’. 유 시인이 시를 먼저 낭독한 뒤 제목을 말하자 객석에서 감탄과 웃음이 터졌다. 제목은 ‘차가 지나갔다’다. ‘연못에 숨어 / 물 바깥 보려고 / 조금씩 밀어 올린 걸까’라는 시의 제목은 ‘개구리 눈’이다. 유 시인은 “제목 맞히기 퀴즈를 해보면 온갖 상상력이 쏟아지더라”며 “손바닥 동시가 누구나 쉽게 쓰고 즐길 수 있는 문학적 놀이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 시인은 초등학생들이 쓴 손바닥 동시도 함께 소개하면서 “길이는 짧아도 자꾸만 곱씹게 되는 여운이 손바닥 동시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손바닥 동시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 12년이 걸렸다. 우연히 유 시인의 손바닥 동시를 본 고 김이구(1958~2017) 문학평론가의 제안으로 지난해 책으로 묶여 나왔다. “처음 손바닥 동시를 쓸 때만 해도 이걸 누가 알아줄까 싶었어요. 나만의 꿈으로 끝날 줄 알았죠. 그런데 책이 나오고 큰 상도 받으니 정말 꿈만 같아요. 책 출간을 못 보고 돌아가신 김이구 선생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잊히지 않아요. ‘더운데 애쓰셨네.’ 저에게 큰 격려가 됐습니다.”
유 시인은 어른을 위한 ‘손바닥 시’도 쓰고 있다. 책으로 출간할 계획도 갖고 있다. 지난해 11월엔 세 번째 시집 ‘고백이 참 희망적이네’(문학동네)도 냈다. 유 시인은 “동시를 쓰면서 시를 더 좋아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동심적 상상력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이야기를 작동시키는 원리이자 근원적 힘으로서 ‘동심’을 말합니다. 동심적 상상력으로 시를 계속 쓰고 싶어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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