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출신 여성인 A(32)씨는 지난해 7월 브로커 소개로 한국의 마사지 업소에서 일하게 됐다. 무비자 체류 기간을 넘긴 11월, 출입국 사무소에서 나왔다는 사람들이 업소에 들이닥쳤다. 이들은 “말을 듣지 않으면 강제출국 시키겠다“며 A씨와 동료들을 오피스텔로 데려가 가두고 돈을 빼앗았다. 명령에 따라 태국으로 돌아간 A씨는 귀국 뒤에야 이들이 공무원을 사칭한 또 다른 브로커 일당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서울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지난해 11월 26일 서울 양천구의 한 마사지 업소에 위조한 공무원증을 가지고 들어간 뒤 불법체류자 단속을 빌미로 A씨 등 5명을 감금해 1,000만원 가량의 현금과 귀금속을 빼앗은 혐의(공문서위조 및 행사, 공동공갈 등)로 박모(33)씨 등 5명을 검거하고 이 중 4명을 구속해 검찰에 넘겼다고 24일 밝혔다. 박씨 일당은 범행 이후에도 꼬리를 밟히지 않으려 피해 여성들을 모두 출국시키는 치밀함을 보였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 등은 지난해 초부터 태국에서 입국시킨 여성들을 마사지 업소에 소개하는 브로커로 활동해 왔다. 태국 여성들을 모집해 직접 불법 마사지 업소를 운영한 적이 있는 이들은 과거 경험을 통해 마사지 업소 직원들 대부분이 불법 체류 중이며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이주 여성들을 불법 유인하던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범행 수법을 고도화한 것이다. 허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상담한 수많은 태국 여성 중 브로커의 직간접적인 협박을 받아보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불법 취업한 해외 이주 여성들은 이처럼 브로커의 횡포에 이중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피해를 당한 이주 여성들은 경찰이나 단속 공무원을 사칭하는 브로커의 주장을 그대로 믿는 경우가 많고, 브로커와 연결된 태국 현지 브로커가 혹시 자신이나 가족을 해칠까 두려워 신고도 못한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귀국한 뒤에도 본인들은 출입국으로부터 출국 당한 줄 알고 있었다“며 “A씨의 경우 다행히 신고가 있었고 업소 주인도 협조적인 편이라 범인을 검거하고 소유자가 특정된 금품은 돌려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법무부와 경찰청의 유흥ㆍ마사지업소 특별단속 방침이 피해 이주 여성들을 더욱 사지로 몰아넣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태국 마사지 업소 피해 여성들을 상담하고 보호해 온 김태정 두레방 활동가는 “브로커 활동을 엄단해 애초 인신매매 피해를 예방해야 하고 귀국한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 네트워크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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