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수사에 침통… 김명수 대법원장 4번째 대국민 사과
“이 지경까지 뭐했나” 한탄 속 “사법부 변화 계기” 목청도
24일 새벽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독방에 수감됐다. 24일 아침 김명수 현 대법원장은 국민께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여야 했다. ‘2019년 1월 24일’은 사법부 역사에 지워지지 않을 치욕의 날이었다.
불과 1년 4개월 전까지만 해도 사법부를 대표하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영어의 몸이 된 이날, 법원은 하루 종일 침통한 모습이었다. 1948년 사법부 출범 후 처음 맞는 전직 수장 구속 사태에 법원 구성원들은 사법농단 수사 찬반 입장과 상관 없이 “참담하다”는 말만 내놓았다. 다만 법원 스스로 전직 대법원장의 범죄 혐의를 인정해 구속영장을 발부한 이상, 이번 양 전 대법원장 구속사태를 진정한 사법부 변화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지켜 본 법관들은 ‘유구무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전직 수장이 구속된 마당에 법원에 몸 담은 우리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며 “대법원장 혼자 사법농단을 벌인 게 아닌 만큼 우리 모두 죄인이 된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도 “직전 대법원장이 구속될 만큼 사법농단이 심각하게 법원에 뿌리 내리고 있었음을 다시 한 번 절절하게 느꼈다”며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우리가 뭘 하고 있었나 죄책감도 든다”고 덧붙였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날 출근길에서 기자들을 만나자마자 “다시 한번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참으로 참담하고 부끄럽다”며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말씀을 드려야 우리의 각오를 밝히고 국민께 작으나마 위안을 드릴 수 있을지 저는 찾을 수 없다”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사법농단 자체조사 결과가 나왔던 지난해 5월, 대법원의 개혁조치가 나온 지난해 9월, 양 전 대법원장이 검찰에 소환된 지난 11일에 이은, 네 번째 대국민사과다.
앞으로 사법부에 더 큰 시련이 찾아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사법농단 관련자가 기소돼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오면 재판 증인신문 과정에서 또 한 번 법원이 크게 상처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고법의 또 다른 부장판사는 “영장실질심사 때 양 전 대법원장이 후배들의 진술을 모두 부정했다 하는데, 앞으로 있을 공판에서 후배 법관들이 증인으로 나와 양 전 대법원장과 사실관계를 두고 다투게 되면 국민들이 사법부를 어떻게 생각하겠냐”며 걱정했다. 재판 과정에서 밝혀질 사법농단의 더 추한 진실을 마주하기 두렵다는 의견도 있었다.
실망과 우려와는 별도로 지금껏 ‘사법부 독립’이란 이름 아래 이루어진 법관들의 잘못된 관행을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지역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우리가 그간 너무 편의적으로 운영해왔던 것들에 경각심이 든다”며 “비록 이를 깨닫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또 너무 많은 걸 잃었지만, 지금이라도 원칙을 지켜나간다면 언젠가는 사법부 신뢰를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을 기점으로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가 마무리단계에 접어들며 그간 수사 때문에 추진이 보류됐던 사법개혁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사법농단 연루자들을 형사처벌 한다고 이 사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게 아니다”며 “법원 내에서 조직적 부패가 일어난 배경과 원인을 되짚고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게 하루 빨리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이라고 말했다.
한편 구속영장이 발부된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새벽 서울구치소 독거실에 수감됐다. 검찰은 구치소 수용이 심야에 이뤄진 점 등을 감안해, 25일부터 양 전 대법원장을 불러 사법농단 관련 추가 의혹을 조사하기로 했다. 설 연휴 직후쯤 양 전 대법원장을 기소하면 지난해 7월부터 계속된 사법농단 수사는 사실상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o.com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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