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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직접증거로 승부수, 단번에 ‘마지막 성역’ 허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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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직접증거로 승부수, 단번에 ‘마지막 성역’ 허물다

입력
2019.01.24 03:32
수정
2019.01.24 23:52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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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사법부 수장 구속영장 발부… 이규진 수첩 등 물증 결정적

양승태 “나에 대한 모함” 자충수, 증거 인멸 가능성만 부각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24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민중당 관계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의왕=연합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24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민중당 관계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의왕=연합뉴스

24일 새벽 헌정사상 최초로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됐다. ‘기각 우세’ 전망을 깨고 전격적으로 영장이 발부된 것은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직접 범죄 혐의와 관련된 다수의 물증과 진술 등을 확보한 것이 결정타였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양 전 대법원장이 전날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검찰이 제시한 객관적 증거들에 대해 “모함이다” “왜곡됐다”는 말로 반발한 것이 오히려 증거인멸 가능성을 부각시키는 역효과를 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범죄사실 중 상당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 중대하며,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경과와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발부 사유 순서에서 드러나듯,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영장 발부는 우선 검찰의 증거들이 효과적으로 영장전담 부장판사에게 설명된 것에서 시작됐다.

실제로 검찰은 5시간30분 동안 진행된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Δ강제징용 재판과 관련해 ‘김앤장’ 변호사를 독대한 사실이 적시된 문건 Δ판사 불이익 처분과 관련해 직접 ‘V’표시를 했다는 기안 문건 Δ대법원장의 지시를 구체적으로 표시한 이규진 부장판사의 업무수첩 등 증거를 집중적으로 제시했다. 단순히 범죄의 중대성을 대의명분으로 강조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물증들로 “양 전 대법원장이 범죄를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한 핵심 행위자”라는 주장을 효과적으로 부각시켰다는 얘기다.

검찰의 세가지 증거 집중 전략은 양 전 대법원장의 이른바 모함 발언 등의 자충수로 더 극대화된 것으로도 파악된다. 양 전 대법원장은 문건 작성이나 독대 등의 행위에 대해선 “통상 업무의 일환이었고, 독대 사실을 김앤장 변호사가 왜곡해 진술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이 부장판사의 수첩 증거에 대해선 “사후에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 나를 모함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모함과 왜곡의 구체적 정황 제시도 없는 양 전 대법원장의 이 같은 주장은 영장전담 부장판사 입장에선 사실관계를 다투겠다는 취지를 넘어 “증거를 적극적으로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역으로 인식할 수 있는 부분이 됐다. 가뜩이나 “결국 전직 수장에 대해 봐주기 판단을 내리는 것 아니냐”는 여론의 강한 의심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법원으로선, 양 전 대법원장의 발언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도 막판에 상당한 부담감으로 작용했을 공산이 크다.

법원의 정무적 결단도 영장 발부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도 보인다. 여론은 검찰이 지난 18일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밝힌 “재판개입 등을 주도한 양 전 대법원장의 범행은 헌법을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라는 프레임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명백한 사유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영장을 기각할 경우 법조계는 물론 국민적 차원에서의 후폭풍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궁지에 몰린 법원으로선 모호한 영장 기각으로 수많은 비난을 받는 것보다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해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고육지책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사법 역사에 치욕의 기록을 남긴 양 전 대법원장은 영장이 발부되면서 즉시 미결수용자로 신분이 전환됐다. 그를 수감하게 된 서울구치소 측은 안전 등 수용관리 측면과 전직 대법원장으로서 예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그에게 독거실(독방)을 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서울구치소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10.08㎡(화장실 포함ㆍ3.04평) 면적의 독거실을 이미 사용하고 있다. 사법농단 사태를 촉발시킨 행정부와 사법부의 전직 최고 수장들이 같은 구치소에서 법의 최종 심판을 기다리는 슬픈 ‘역사적 그림’이 완성된 것이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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