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간 전선 ‘안보분야’로 확대해 중점사안인 ‘개헌명분’ 삼으로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초계기가 한국 해군 함정에 저공 위협비행을 하는 등 도발을 반복하는 배경에는 한일관계 악화를 국내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일본 정부의 의도가 숨어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일본 기업에 대한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경색된 한일관계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하기 보다 양국 간 전선을 안보 분야로 넓히는 게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과의 관계 등 국제관계에서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나 위안부를 위한 화해ㆍ치유재단 해산 결정은 양국 간 오래된 과제인 역사문제와 관련돼 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일본이 촉발한 ‘레이더 조사(照射ㆍ겨냥해 쏨) 논란’은 그간 별다른 갈등이 부각되지 않았던 군사ㆍ안보 문제란 점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개헌을 위한 명분으로 삼으려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물론 야당들은 아베 정부가 추진하는 개헌에 소극적이고 국민들의 여론도 부정적인 의견이 다수다. 이에 주변국과의 안보 갈등으로 자위대를 포함한 군사력 강화 움직임을 지지하는 여론을 조성, 개헌 동력으로 삼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결국 군대 보유 금지와 교전권을 부인한 헌법 9조를 개정, 전쟁 가능한 국가로 나아가겠다는 게 아베 총리의 구상이다. 이 와중에 일본이 주변국 가운데 안보분야에서 갈등을 일으킬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중국은 지난해 중일 정상회담을 통해 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고, 러시아와는 쿠릴 4개 섬 반환과 평화조약 체결 협상 중이다. 북한도 일본의 최우방국인 미국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싼 협상 중이다.
일본의 도발은 대법원 판결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염두에 둔 국제 여론전 차원으로도 풀이된다. 아베 총리는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국제법에 비춰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고 반발했다. 일본 정부도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취지의 국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의 ICJ 제소에 응할 의무가 없다. 사실상 재판을 통한 해결보다 한국의 국제 신뢰도를 떨어뜨리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다. 레이더 조사 갈등 과정에서 벌이고 있는 일본의 행보도 이와 유사하다. 자국의 영상과 레이더 탐지음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면서 한국과 진위 여부를 따지기 보다 국제 여론전을 의식한 행보를 반복하고 있다. 방위성이 한일관계 악화를 우려, 영상 공개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음에도 공개를 지시한 이도 아베 총리였다.
보수ㆍ우익단체가 주요 지지층인 아베 총리 입장에선 한국에 대한 도발로 인한 적잖은 효과를 거두고 있다. 22일 공개된 산케이(産經)신문ㆍ후지뉴스네트워크(FNN) 여론조사 결과 “일본 정부의 영상 공개를 지지한다”는 응답은 85.0%, “위협비행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 한국 대응을 납득할 수 없다”는 응답이 90.8%였다. 이 같은 여론을 바탕으로 아베 내각 지지율은 지난달 조사보다 4.2%포인트 상승한 47.9%를 기록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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