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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디디의 우산’ 낸 황정은 “해결된 건 하나도 없죠… 고통이 계속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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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디디의 우산’ 낸 황정은 “해결된 건 하나도 없죠… 고통이 계속 되니까”

입력
2019.01.23 20:00
수정
2019.01.23 21:0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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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세운상가는 ‘디디의 우산’의 주된 배경이자, 작가가 어린 시절 뛰어 놀았던 공간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구체적인 지명이 필요했는데, 제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곳을 쓰려다 보니 자연스레 세운상가가 배경이 됐어요. 중학교 때 집이 있던 방화동에서 삼선 슬리퍼를 끌고, 버스를 타고 놀러 다녔던 곳에 세운상가에요.” 배우한 기자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는 ‘디디의 우산’의 주된 배경이자, 작가가 어린 시절 뛰어 놀았던 공간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구체적인 지명이 필요했는데, 제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곳을 쓰려다 보니 자연스레 세운상가가 배경이 됐어요. 중학교 때 집이 있던 방화동에서 삼선 슬리퍼를 끌고, 버스를 타고 놀러 다녔던 곳에 세운상가에요.” 배우한 기자

상실 이후 남겨진 사람의 삶은 어떤 방식으로, 서서히, 구체적으로 무너져 내리는가. 어떤 것들로 겨우 지탱되며, 어떤 것들로 침잠하는가. 그리고 회복은 어떻게 다시 가능해지는가. 그것을 고민하는 게 여전히 소설가의 몫이라는 믿음이 남아 있다면, 황정은(43)은 그 몫을 기꺼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상실과 고통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는 작가다.

2010년 장편소설 ‘백의 그림자’로 한국일보 문학상을 수상한 황 작가가 ‘아무도 아닌’ 이후 2년 만에 중편 연작소설 ‘디디의 우산’으로 돌아왔다. 10년 전 ‘백의 그림자’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고 이번 소설에도 직간접적 역할을 하는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에서 황 작가를 만났다. 겨울 먼지와 햇빛이 부유하는 오후, 세운상가 안쪽에서 짙은 회색머리를 하고 같은 색의 얇은 코트를 걸친 황 작가가 절뚝거리며 걸어 나왔다.

“운동을 하다가 조금 다쳤어요.” 황 작가가 인사를 건넸다. 새 책을 낸 소감을 물었다. “오랫동안 못 만난, 그리운 사람을 다시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에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요, 잠도 못 이룰 정도로 보고 싶은 사람을 기다리듯 책이 나오길 기다렸어요. 아마도 오랫동안 생각해 온 이야기라 그렇겠죠.”

책은 중편소설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두 편을 엮었다. ‘d’는 2010년 발표한 단편 ‘디디의 우산’을, 황 작가 표현에 따르자면 “부숴 만든” 소설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그는 한동안 아무것도 쓸 수 없었다고 했다. “종래 내가 가진 것 중 무언가가 심각하게 파괴된 것처럼, 종래 쓴 소설 중 무언가가 파괴될 필요가 있다는 판단” 끝에 그해 가을 다시 쓴 게 단편 ‘웃는 남자’였다. 그리고 중편 ‘d’로까지 이어졌다.

등장인물 하나 겹치지 않는 소설을 연작으로 엮은 건 두 편 모두 2014년 4월 16일 이후 내내 이어진 황작가의 고민들이기 때문이다. 연인을 상실하고 죽음과 같은 나날을 보내던 d가 주인공인 ‘d’. 세운상가에서 물류 일을 하면서 d가 ‘여소녀’를 만나고 이내 다시 세상으로 향하는 이야기다. d가 발을 내딛는 건 “그 배가 가라앉은 지 일년이 되는” 날, “세월호를 인양하라”는 구호가 울려 퍼지는 광화문 광장이다.

‘혁명’이라는 화두를 둘러싸고 작가가 끊임없는 질문과 답을 주고받는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가 ‘d’를 이어받는다. 학창시절 ‘운동’에 참여했다 환멸과 마주하고 자기 앞마당이나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던 ‘나’는 “이미 뒤집힌 그 배의 바닥을 바라보며” 말을 잃는다. 이후 그는 촛불집회에 참석하며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을 다시 생각한다. 황 작가도 파리에 체류 중이던 첫 번째 촛불집회 날을 제외하고는 모든 집회에 참석했다. 소설에는 그런 경험이 곳곳에 스며 있다.

황 작가는 “염색을 하면 머리가 가벼워지는 느낌이 있어 주기적으로 색소를 섞는다”며 웃었다. 은발로 염색한 지는 한달 남짓 됐다고 했다. 배우한 기자
황 작가는 “염색을 하면 머리가 가벼워지는 느낌이 있어 주기적으로 색소를 섞는다”며 웃었다. 은발로 염색한 지는 한달 남짓 됐다고 했다. 배우한 기자

그러나 세월호를 소설로 쓰는 것은 작가에게도 ‘불안’과 ‘공포’가 따르는 일이었다. 소설의 결말을 ‘열린’ 채로 두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그럼에도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부끄러움’과 ‘책임감’ 때문이었다. “어른이란 도대체 뭘까를 오래 고민했는데 제겐 그걸 느끼는 분기점이 부끄러움이었어요. 사회적 존재로 살면서 사회가 지금의 모습에 이르는 데 영향을 끼친 어른이라면 본인이 싫든 좋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광장과 거리에 모였던 많은 사람이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소설의 ‘나’ 역시 스스로의 낙담이 지금의 세계를 만들었을지 모른다는 어른으로서의 부끄러움이 있는 거죠.”

세월호는 그래도 기억되지 않았나. 세월호가 세상을 조금은 바꾸지 않았나. 황 작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여전히 고통은 계속된다”고 했다. “정권이 바뀌고 좀 달라지지 않았냐고 질문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여전히 저는 한국사회를 감각하는 기준이 세월호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맞춰져 있어요. 그 분들에겐 끝나거나, 해결된 것이 없으니까요.” 

등단한 지 15년. 굵직한 상들을 받았고 그의 소설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팬들도 있다. 부정할 수 없이 ‘어른’인 소설가 황정은이 느끼는 ‘책임’은 무엇일까. “최근엔 돈 얘기를 일부러라도 해요. 원고료가 좀 올랐으면 좋겠어요. 저는 운이 좋아 전업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고 다들 어렵다는 걸 아니까요. 이제 중견작가라는 말을 듣는데, 중견이니까 작가에겐 돈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얘기를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신예 작가들이 더 나은 조건으로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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