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상품따라 일구이언
허위ㆍ과장ㆍ위화 발언도 난무
5년간 486건 심의에 올라
# “이런 명품 가방 하나쯤은 있어야 해요. 중요한 자리뿐만 아니라 직장인들도 고급스러운 멋을 낼 수 있어요. 여자에게 핸드백은 이제 얼굴이나 마찬가진데, 아무거나 들고 다닐 수 없잖아요. 요새 이런 건 필수품이에요.”
# “어떻게 매일 몇 백만 원짜리 명품가방을 들고 다녀요? 손때가 타거나 흠집 날까 무서워서 모셔두는 경우가 많잖아요. 대신 이런 핸드백은 데일리(매일)로 들 수 있어서 실용적이고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갑’이에요.” (롯데홈쇼핑 쇼호스트 A씨)
요즘 TV홈쇼핑 채널을 켜면 자주 들리는 표현이다. 그런데 위의 말을 모두 한 사람이 했다면 어떨까. 매 방송마다 매진을 끌어내며 ‘억대 몸값’을 자랑하는 각 사별 대표 쇼호스트들의 ‘한 입으로 두 말하기’가 난무하고 있다. CJ오쇼핑, GS홈쇼핑, 롯데홈쇼핑, 현대홈쇼핑 등 홈쇼핑방송사업자들의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인데, 과소비를 부추기는 과대 과장 표현, 지역ㆍ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하는 발언 등이 걸러지지 않은 채 그대로 전파를 타고 있다는 지적이다.
23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홈쇼핑 방송사업자의 방송 내용 중 486건이 심의 대상에 올랐다. 소비자들의 불만 등 민원을 접수한 뒤 관련 방송 내용이 적절했는지 심의하는 것이다. 심의에 오른 주요 사유는 허위ㆍ과장ㆍ오인 등 시청자 기만행위가 절반을 차지했다. 업체별로는 CJ오쇼핑이 93건으로 가장 많았고, 롯데홈쇼핑 75건, GS홈쇼핑 72건 순이었다.
최근에 문제로 떠오른 건 고가와 중저가 제품을 소개하는 쇼호스트들의 부적절한 표현들이다. CJ오쇼핑의 인기 쇼호스트 B씨는 “우리 나이에 이런 제품 없으면 ‘왕따’ 당한다”가 단골 멘트이고, 롯데홈쇼핑의 베테랑 쇼호스트 C씨 역시 “청담동, 압구정동 등 강남 나가면 이런 거 다 입고(들고) 다닌다”고 서슴없이 이야기한다. GS홈쇼핑의 쇼호스트 D씨는 “엄마들 모임에 이것만 들고 나가면 끝(장)!”이라고도 한다.
값비싼 명품을 판매할 때는 희소가치에, 중저가 제품은 실용성에 중점을 두고 서로 상반된 멘트를 쏟아내는 것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도 컸다. 30대 직장인 이소영씨는 “CJ오쇼핑의 젊은 쇼호스트가 30만원대 고가의 캐시미어 니트를 판매할 때는 중저가 니트를 폄하하며 ‘보풀이 일어나는 저가 니트와는 비교 말라’더니, 10만원 이하의 청바지 제품 방송에선 ‘OOO같은 명품 브랜드는 입고 앉을 수나 있겠나’라며 일구이언 하더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60대 주부 조순해씨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가 익숙하지 않아 홈쇼핑 방송을 자주 보지만, 상품의 상세한 설명보다는 쇼호스트의 개인 품평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T커머스를 포함해 10개가 넘는 홈쇼핑채널들의 허위ㆍ과장ㆍ오인 방송이 갈수록 심각해지자 방통심의위가 칼을 빼 들었다. 지난해 4월 홈쇼핑방송 심의를 전담하는 ‘상품판매방송팀’을 신설하고, 과장ㆍ오인 표현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방통심의위는 문제가 심각할 경우 과징금 부과, 관계자 징계 등의 법정 제재를 내릴 수 있다.
다만 비판의 표적이 된 홈쇼핑방송사업자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방송 전 쇼호스트나 외부 게스트 등에게 올바른 표현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사후 제재 조치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CJ오쇼핑은 지난해부터 허민호 대표이사가 직접 위원장을 맡은 ‘정도방송위원회’가 운영되고 있다. 논란이 된 쇼호스트는 출연 정지 등의 조치와 함께 재계약 때 해당 내용을 반영하는 등 사내 징계 수위를 높였다. 또 연예인 등 외부 게스트는 첫 출연 때 방송심의교육을 받고 ‘방송심의준수서약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GS홈쇼핑도 월 1회 ‘공정방송커미티’를 운영 중이다. 시청자에게 오해를 줄 수 있는 표현을 쓴 쇼호스트와 외부 게스트 등은 자체 심의해 ‘출연정지’ 조치를 내리고 있다. 롯데홈쇼핑도 쇼호스트와 제작진을 대상으로 올바른 방송 언어 사용 교육을 연 2회 실시하고 있다. 한국TV홈쇼핑협회 관계자는 “현재 홈쇼핑채널들은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한 심의팀을 가동하고 있다”며 “자발적인 정정방송 등으로 자정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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