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반관(半民半官) 기관인 금융감독원의 공공기관 지정을 둘러싼 해묵은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올해는 지정 여부 결정 일주일을 앞두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인력 구조조정을 지정 면제의 조건으로 제시하고 금감원이 이를 수용할 뜻을 밝히면서 가까스로 갈등이 봉합되는 양상이다. 금감원 안팎에선 금융감독기관의 독립성 보장과 공적 통제라는 대립적 요구 사이에 근본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공공기관 지정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이 계속 되풀이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홍 부총리는 23일 금감원 공공기관 지정 관련 질문을 받고 “(3급 이상 직원 비율을) 35%까지는 맞춰야 (공공기관 미지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와 수용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직급은 6단계로 구성돼 있는데 1~3급엔 실국장ㆍ팀장 등 간부와 수석조사역이 포함돼 있다. 2017년 기준 전체 직원의 45%인 이들의 비율을 10%포인트 낮추라는 것이 홍 부총리가 내건 조건인 셈이다.
이를 두고 금감원이 지난해 말 소관부처인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인력 감축 목표(10년 내 3급 이상 비율 35%로 감축)를 홍 부총리가 일정 부분 추인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공공기관 지정 심의ㆍ의결 기구인 기재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는 지난해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을 유보하며 ‘방만한 조직구조 개편’을 조건으로 내건 바 있다.
다만 기재부는 감축 완료 기한을 금감원이 제시한 10년보다 앞당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내부적으로는 5년 내에 감축 목표를 이행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부 관계자는 “금감원이 인력 감축 의지를 담은 달성 시한을 제시해야 공운위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기재부가 제시한 조건을 수용할 뜻을 밝혔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이날 ‘3급 이상 비율 감축 목표를 5년 내 완료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취재진 질문에 “쉽지 않지만 필요조건이라면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며 “현재 실무진이 방안을 마련하고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금감원이 기재부 요구에 부합하는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할 경우 오는 30일 열리는 공운위 회의에서 금감원 공공기관 지정안은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
금감원 공공기관 지정을 둘러싼 논쟁은 거의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금감원 관련 비리 혐의가 불거진 해엔 논란이 더욱 뜨겁다. 저축은행 사태로 감독 부실 및 유착 문제가 드러난 2011년, 금감원 임직원이 금융권 채용비리에 연루됐던 재작년이 대표적 사례다.
공공기관 지정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기재부다. 금융감독의 공적 기능을 감안할 때 금감원을 공공기관에 편입해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감원이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금융위와 더불어 기재부가 금감원의 예산 및 평가 권한을 갖게 된다.
반면 금감원은 금융회사 감독 업무의 토대인 독립성과 자율성이 침해돼 ‘관치 금융’이 심화할 수 있다고 반대한다. “유럽 등 선진국의 사례로 볼 때 금융감독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에 역행한다”(고동원 성균관대 교수)는 지적도 있다. 금융위 또한 금감원 공공기관 지정에 반대 입장이다. 일각에선 막강한 금융감독권을 지닌 금감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정부 부처들의 계산이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더구나 홍 부총리의 발언으로 당장의 논란은 수습되는 분위기지만, 인력 구조조정은 쉽지 않은 작업인 만큼 금감원의 인력 감축 이행 성과에 따라 공공기관 지정 논란이 언제든 불거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금감원 직원이 2,000명가량인 점을 감안해 단순 계산하면 금감원이 기재부 요구를 이행하려면 5년 이내에 3급 이상 직원을 900명(45%)에서 700명(35%)으로 200명가량 줄여야 한다. 가뜩이나 심각한 금감원 내 인사 적체가 더욱 심화되면서 내부 불만이 높아질 수 있는 여건이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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