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만달러 달성 이후 12년 만에… 인구 5000만 이상 ‘30-50 클럽’ 진입
과실이 몰리며 분배 악화 ‘복병’… 저출산ㆍ양극화 극복 없이 4만달러 난망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 접어든 지 12년 만인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인구가 5,000만명 이상이면서 소득 3만달러를 넘는 ‘30-50 클럽’ 국가로는 세계 7번째다.
세계 최빈국에서 출발한 대한민국의 소득 3만달러 진입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의 ‘인증 마크’란 점에서 분명 자부할 성취이다. 다만 3만달러 시대를 맞는 국민들의 만족도나, 향후 더 높은 곳(소득 4만달러)에 도달하리란 확신이 지금의 한국 경제엔 부족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당장 2%대로 내려앉은 지난해 성장률이나, 고용과 수출 부진 등의 악재가 선명하다. 여기에 날로 커지는 소득불평등, 늙어가는 산업구조, 저출산ㆍ고령화 부담 등은 우리 경제의 추가 도약을 단단히 발목 잡고 있다. 자칫 우리보다 먼저 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열고도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한 채 좌초한 나라들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12년 만에 맞은 소득 3만달러
한국은행은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 추정치가 3만1,000달러를 넘었다고 22일 밝혔다. 우리나라 1인당 GNI가 3만달러를 돌파한 건, 2006년 2만달러 돌파 이후 12년 만이다.
1인당 GNI는 2006년(2만795달러) 처음 2만달러를 넘어섰고 지난해 2만9,745달러로 3만달러에 근접했다. 2만에서 3만달러까지 평균 10년이 걸린 앞선 나라들과 비교하면 2년 가량 더 걸렸지만, 도중에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친 점을 감안하면 양호한 속도라는 평이다. 오는 6월 공개되는 국민계정 기준연도 개편(2010년→2015년) 결과에 따라서는 3만 달러 진입 시점이 2017년으로 1년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1인당 소득 3만달러는 선진국 진입의 문턱으로 간주된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선진국의 소득 기준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1인당 3만달러는 미국(2016년 기준 5만6,810달러)엔 못 미쳐도 일본이나 유럽 선진국과도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은 세계적으로 인구가 많은 국가에 속하는 만큼 3만달러 돌파의 의미가 작지 않다. 2016년 기준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 국가는 30곳이지만, 우리처럼 인구가 5,000만명을 넘는 이른바 ‘30-50클럽’ 국가는 6개국(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63년 100달러, 1977년 1,000달러, 1994년 1만달러, 2006년 2만달러를 잇따라 돌파했다. 후발 산업국가로서 중화학 산업 육성, 수출 주도 성장에 부족한 자원을 집중해 효율을 높인 것이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고도성장의 비결로 꼽힌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소득 1만달러 시대에 외환위기, 2만달러 시대에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난관을 뚫고 거둔 의미 있는 성과”라고 평가했다.
◇4만달러 진입은 언제쯤?
3만달러 시대의 관심은 자연스레 우리 경제가 4만달러 시대로도 도약할 수 있을지에 쏠린다. 세계적으로 1인당 소득이 4만달러를 넘는 국가는 23곳(2016년 기준)이다.
우리보다 앞서 소득 3만달러를 넘어선 나라들은 4만달러까지 도달하는 데 평균 4.3년이 걸렸다. 현대경제연구원 추계에 따르면 향후 한국의 성장률이 연평균 3%일 경우 2023년이면 4만달러에 진입할 수 있다. 이는 3만달러 돌파 이후 5년 만으로, 다른 4만달러 진입 국가들의 속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연평균 성장률을 3.5%로 끌어올리면 진입시기가 1년 당겨지고 2.5%로 떨어지면 1년 늦춰진다.
하지만 객관적 여건은 녹록하지 않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4만달러 달성 국가들의 3만~4만달러 시기 경제지표 평균치를 100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는 성장률(124)과 경상수지(319), 제조업 성장률(124), 연구개발 투자 비율(183) 등은 상대적으로 좋았다. 하지만 내수 성장률(67), 서비스업 성장률(92), 고용률(98)에선 뒤처진다. 제조업 위주 수출에 편중된 그간의 성장전략 한계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더구나 사회적 자본으로 분류되는 정부 효율성(70), 비즈니스 효율성(37), 사회적 갈등(55), 투명성(65) 등 이른바 선진국형 지표들에선 앞선 나라들에 한참 뒤지고 있다.
전문가들도 4만달러 진입이 만만치 않는 과제라고 본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높은 대외 수출 의존도 속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고 수출 실적을 낼 기업이 많지 않다는 게 문제”라 고 지적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외환위기나 금융위기의 전례에서 보듯이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글로벌 리스크가 우리 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대외건전성을 늘 탄탄하게 하고 재정 적자가 지나치게 늘어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령화ㆍ양극화부터 극복해야
금융위기 이후 심화되는 경제적 조로(早老) 현상을 극복하고 무엇보다 경제의 활력을 되찾는 게 급선무라는 지적도 높다. 이미 우리나라 성장률은 금융위기 이후 2~3%대에 머물며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하는 형국이다.
특히 저출산ㆍ고령화 심화로 잠재성장률마저 2%대 중후반까지 떨어지며 성장능력 자체가 급속히 둔화되고 있다. 한은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지금의 고령화 속도가 늦춰지지 않을 경우 성장률은 2016~2025년 연평균 1.9%, 2026~35년 0.4%로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분배 악화는 또 다른 복병으로 꼽힌다. 국민총소득이 늘어도 이를 체감할 계층이 적으면 ‘소득 증가→소비 증가→성장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실제 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노동소득분배율은 2017년 63.0%로 하락하며 2014년(62.8%)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성장 과실이 가계보다 기업에 몰리며 '풀뿌리 경제'를 약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가계 사이에서도 소득 양극화가 뚜렷하다. 지난해 상반기 소득 10분위별 가구소득 증가율(전년동기 대비)을 보면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포괄하는 1~5분위 소득은 일제히 감소하고 이보다 소득이 높은 6~10분위 소득은 모두 상승했다.
하준경 교수는 “한국의 고도성장 요인 중 하나는 1950년대 농지개혁 등으로 평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인센티브 체계’가 구축된 것이었다”며 “누구든 열심히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포용적 성장 체제를 서둘러 짜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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