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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의 다시 광릉 숲에서] 나무처럼 나이들기2

입력
2019.01.23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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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와 같이 포플러 종류인 은사시나무
판도와 같이 포플러 종류인 은사시나무

‘광릉숲에서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으로 한국일보에 처음 글을 싣기 시작한 때가 2002년이었습니다. 16년 만에 ‘다시 광릉숲에서’를 다시 시작하며 결심했던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얼마나 넓어지거나 혹은 깊어졌는가를 생각해보니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더라고요. 새로 공부하지 않고, 단편적으로 보태어지는 지식으로, 깊이 고민하지 않고 떠오르는 생각들로 메웠던 많은 지면이 말입니다. 그래서 단 한 가지라도 새롭게 공부하여 알게 된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글은 쓰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거죠.

지난 편지에 소개해 드렸던 가장 오래 살았던 나무는 ‘브리슬콘 파인(Bristlecone pine)’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판도(Pando)’라는 나무군락이 가장 오래 살고 있는 나무라는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미국 유타주에 가보면 흰빛이 도는 수피로 마치 자작나무 숲처럼 보이지만 정확하게는 트렘블링포플러(trembling poplar; Populus tremuloides)라는 나무가 43㏊의 면적에 걸쳐 4만7,000그루가 살고 있습니다. 이 수많은 나무들이 모두 동일한 DNA를 가지고 있으며 땅속에서 하나의 뿌리로 연결되어 있고 그 뿌리의 나이는 8만년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땅 위로 올라온 각각의 줄기 나이는 평균 130년이지만 말입니다.

‘나무’라고 해야 할지 ‘나무들’이라고 해야 할지? 나무 한 그루란 줄기와 뿌리를 합친 것인지, 뿌리를 기준으로 한 것인지도 혼란스럽더라고요. 이 나무, 이 나무들은 양분과 수분의 상태가 좋은 곳을 따라 조금씩 다른 곳에 줄기를 올리며 이동을 하고 있으니 나무는 한자리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부정하게 되네요. 이 나무군락이 그 긴긴 세월을 살아온 비결이 바로 모습에서 사는 방법까지 파격적인 변신에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판도는 왜 이런 방식으로 살고 있을까요?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으나 건조하여 산불이 많이 나는 지역이어서 불이 나면 치명적인 온도에 지상부가 타버리지만 땅속의 뿌리는 살아남아 다시 움을 틔워 올리는 생존방식을 택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높은 산악 지역에 사는 하늘소류들이 경쟁이 되는 침엽수들을 가해하는 것이 판도에게는 큰 득이 되었다고 하네요. 뿌리줄기로 퍼져나가는 대나무류와 유사한 방식이지만 훨씬 적극적입니다. 나무를 포함한 지구생명들이 적응하고 살아남는 방식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치열합니다.

판도의 이야기는 얼마 전 한 지인이 하셨던 걱정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과 같은 기술혁신에 기반한 4차 산업혁명으로 우리는 이미 다른 현재와 미래에 와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회의 리더들의 생각의 틀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말입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적인 방식을 적절히 섞어 살고 있는 저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에게 나무처럼 나이 들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봄이면 새싹내고 꽃 피우며 열매맺는 오래된 산돌배나무
봄이면 새싹내고 꽃 피우며 열매맺는 오래된 산돌배나무

거기에 보태어, 제가 오래된 나무에 가장 감동하는 순간은 줄기가 굳고 속이 비어가는 그 세월 속에서도 봄이면 어김없이 지극히 연하고 말랑한 새순을 내어놓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세상이 꽁꽁 얼어가는 모진 겨울을 앞두고 생장을 포기하는 그 어려운 순간에 고운 단풍 빛으로 아름답게 발현하는 때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나무처럼 나이 들기란 이래저래 실현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싶습니다.

‘백 년을 살아보니’라는 책을 펼쳐내신 철학자 김형석 교수님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60세가 되면 그간 주어진 공부를 하고, 삶을 꾸려가느라 일하고, 자식과 부모를 위해 살았던 삶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기가 오는 것이며 그때부터 75세까지가 자기 자신을 위한 공부를 할 때이라고. 그러고 보면, 전 아직 제 공부를 시작도 못한 나이이니 나무처럼 나이들고자 한다면, 스스로 배움을 소홀히 하지 않고, 유연한 마음으로 때론 견고하게 때론 변화에 함께 흐름을 맞추며 그렇게 따뜻한 사람으로 살아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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