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다솔(29)씨는 2012년부터 매년 ‘시즌권’을 끊는다. 스키장이나 놀이공원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장충동 국립극장의 시즌권이다. 연간 공연 리스트를 미리 확인하고 8~10개의 공연을 찍어 패키지로 구입하는 게 새해를 맞는 그의 즐거움이다. 이씨는 “보통 공연 4, 5편을 볼 가격으로 10편까지 볼 수 있는 게 시즌권의 매력”이라며 “덕분에 공연장에 자주 발걸음을 하게 되고, 그만큼 공연 보는 눈이 밝아진다”고 말했다.
티켓을 패키지로 묶어 판매하는 시즌권이 공연계 ‘대세’로 자리잡았다. 티켓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명당 좌석을 먼저 고를 수 있다는 게 소비자가 누리는 장점이다. 공연 한 건당 티켓 가격과 비교하면 최대 50%까지 할인된다. 공연장 입장에선 관객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패키지 티켓은 연간 기획 공연 라인업을 발표하는 시즌제와 맞물려 도입됐다. 국내에서는 2000년 개관하면서 시즌권을 도입한 LG아트센터가 시초다. 두산아트센터(2009), 서울시립교향악단(2010), 국립극장(2012), 세종문화회관(2016) 등 굵직한 공연장과 단체가 뒤를 이었다.
LG아트센터에서는 ‘자유 패키지’가 가장 인기다. 미리 예약하는 공연 편수가 늘어날수록 할인율이 커진다. 장르는 상관 없다. 10편 이상 선택하면 35%, 6편 이상은 25% 할인된다. LG아트센터의 전체 티켓 판매량 대비 패키지 티켓 판매량은 2000년대 초반 10% 미만에서 올해 약 20%로 늘었다. 후발 주자인 세종문화회관에선 원하는 작품을 10편 혹은 4편씩 골라 담을 수 있는 ‘내 맘대로 패키지’가 인기다. 최대 40%까지 가격이 할인된다. 지난해 세종문화회관 패키지 티켓 판매량은 1,598세트. 2년 만에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로, 공연 실속파가 늘었다는 뜻이다. 두산아트센터는 1년간 무대에 올리는 공연 10편 모두 볼 수 있는 ‘매니아 패키지’를 50% 할인해 판매한다. 서울시향은 정기공연의 약 40%가 시즌 시작 전 패키지 티켓으로 판매된다.
시즌권 관람객을 붙잡기 위해 공연장들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국립극장은 공연 이름을 감춘 ‘시크릿 패키지’를 지난해 처음 도입했다. 공연 한 건 가격인 5만원에 공연 다섯 건을 묶었다. 할인율 80%라는 파격적 가격에 준비한 50세트가 3분 만에 매진됐다. 창작진과의 만남, 다양한 굿즈 제공 등 시즌권 구매자에게 추가 혜택을 주는 공연장들도 있다. 공연계 관계자는 “시즌권 운영으로 충성도 높은 유료관객을 확보할 수 있고, 그 자원으로 취약 공연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는 등 공연계 생태계를 위해 좋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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