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옷에 넣어 한국으로 운반만 해주면 됩니다.”
2017년 7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공짜 관광을 떠난 주부 김모(58)씨는 낯선 여자의 방문을 받았다. 그 여인이 내민 것은 검은색 테이프로 감싼 작은 봉투. 그 안에 든 것은 필로폰 200g이었다. 처음이 어려웠지 그 다음은 쉬웠다. 이후 김씨는 다섯 차례에 캄보디아를 드나들면서 필로폰을 무려 1㎏씩이나 운반했다. 캄보디아를 오가는 여행경비에 수고비까지 쳐서 매번 300만원 정도의 돈을 받았다. 나중엔 아예 마약 분류법 교육을 받고, 국내 판매까지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 때서야 그만두려 했지만, 이미 수사망이 좁혀온 뒤였다.
서울서부경찰서는 주부 김씨를 비롯, 2016년부터 약 3년간 캄보디아에서 필로폰 6㎏ 이상을 들여온 해외 공급총책 한모(58)씨 등 43명을 검거해 이 가운데 14명을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21일 밝혔다.
눈길을 끄는 건 한씨 일당이 김씨 등 주부들을 운반책, 판매책으로 적극 포섭하려 들었다는 점이다. 한씨 일당은 국내에서 필로폰 주문을 받으면 캄보디아에서 생산한 필로폰을 몰래 들여와 거래 장소에 몰래 은닉하는 수법을 썼다. 이 때 국내 반입 운반책으로 30~60대 주부 12명을 이용했다.
평범한 가정 주부라면 한 나라를 여러 번 드나들어도 의심 받을 가능성이 낮고, 속옷에 필로폰을 숨기면 적발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했다. 실제 경찰 조사에서 주부들은 “공항에서 따로 검색을 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끼는 회당 300만원의 수수료와 왕복 항공권, 무료 여행이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운반책을 판매책으로 돌리기 위해 이들 주부들을 캄보디아에 불러다가 따로 교육을 시키기까지 했다. 남성 판매책들이 경찰의 촘촘한 수사망으로 검거되어 판로가 막힌 데 따른 것이다.
경찰에 검거된 이들 주부들은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광시켜 주는 것이라고만 들었다” “공업용 다이아몬드를 운반하는 것이라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경찰은 고의적 가담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마약 수사 분야 관계자는 “예전에는 뭔지 모르고 마약을 운반한 경우가 있지만, 지금은 지속적인 계도 활동으로 그런 사례가 거의 없다”면서 “”봉투만 만져봐도 공업용 다이아몬드가 아니라는 걸 충분히 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을 지난해 4월 국내 판매총책 이모(46)씨, 수도권 판매총책 최모(43)씨 등을 검거한 뒤 수사를 확대, 인터폴과 캄보디아 경찰과 함께 한씨 등을 모두 붙잡았다. 이씨와 최씨 검거 당시 압수한 필로폰은 380g(1만2,673명 동시에 투약 가능)이었다. 경찰은 캄보디아 현지 필로폰 공급자 등으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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