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길 경호차 일제히 움직인 뒤
1시간 넘어서야 호텔 로비에 모습
미 정부 의전장 영접ㆍ환송 ‘특급 예우’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의 2박3일 미국 워싱턴 방문은 한 편의 007 영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극도의 보안 속에서 이뤄졌다. 북미 양측은 김 부위원장의 출국 순간까지 취재진을 상대로 연막작전을 펼치며 동선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방미일정 마지막 날인 19일(현지시간) 김 부위원장이 숙소인 워싱턴의 듀폰서클 호텔을 나선 것은 낮 12시40분쯤이었다. 그의 일정에 맞춰 취재진이 몰려들자 미국 경호요원들은 호텔 로비에 있는 취재진의 신원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밖으로 쫓아냈다. 그로부터 30분 정도 지나자 김 부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텔에 머무는 동안 취재진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화물용 쪽문으로 드나들었던 김 부위원장 일행이 최초로 로비에 나타난 것이다.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과 최강일 외무성 북아메리카 국장 직무대행, 외신에 조선아태평화위원회 위원장으로 소개된 박철이 김 부위원장을 수행했다.
김 부위원장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직후 일부 취재진을 발견하고 당황해 하는 모습이었다. 그의 일행 중에 “기자들이 있네”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김 부위원장과 여행용 가방을 든 수행원들은 한동안 로비에서 미국 측 경호차량을 기다렸다. 사전에 동선이 드러나지 않도록 경호차량을 미리 대기시키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이에 앞서 “김 부위원장 일행이 오전 일찍 호텔을 떠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화물용 쪽문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호차량이 오전 11시30분쯤 일제히 움직이며 호텔 건물을 한 바퀴 돌아 정문을 지나 어디론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김 부위원장 일행이 17일 워싱턴 근교 덜레스 공항으로 입국한 뒤 숙소인 듀폰서클 호텔을 들어올 당시 쪽문을 이용한 만큼 취재진들이 쪽문 주변의 움직임까지 주시하고 있는 것을 감안한 조치로 보인다. 사실상 취재진을 따돌리기 위한 연막작전이었던 셈이었다.
김 부위원장 일행은 미국이 제공한 경호차량을 타고 호텔을 출발한 지 30분 뒤인 오후 1시 10분쯤 덜레스 공항에 도착했다. 미국 측에선 김 부위원장 입국 당시에도 영접했던 숀 롤러 국무부 의전장과 마크 내퍼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국무부 의전장은 통상적으로 장관급 인사에 대한 의전을 맡지만 정상급 외교행사도 담당한다. 때문에 롤러 의전장의 환송은 그만큼 미국이 ‘특급 예우’를 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김 부위원장은 입국 때처럼 공항 1층 중앙 귀빈 전용 수속대를 이용해 곧장 출국장 통제구역 안으로 들어갔다. 터미널에 진입해 VIP 수속대까지 이동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분 남짓이었다. 이 수속대는 장관급 인사 등이 이용하는 시설로 보안검색이 면제된다. 차에서 내려 최단거리로 출국이 가능한 의전 경로다. 김 부위원장은 수속대까지 가는 동안 방미 결과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 공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김 부위원장은 20일 오후 6시36분(현지시간) 귀국길 경유지인 중국 베이징(北京)에 도착한뒤에도 취재진과 일체의 접촉 없이 귀빈통로를 통해 공항을 빠져나갔다. 평양행 비행기는 21일 중국국제항공편과 22일 고려항공편이 있는 만큼 김 위원장은 최소한 1박 이상을 주중 북한대사관에서 할 것으로 보인다. 김 부위원장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워싱턴 방문 내용을 보고하지 않은 상황이라 베이징 체류 기간 중 북중 간 직접 접촉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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