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르르르르르륵. 거물급 피의자가 노란 삼각선 앞에 발 맞추어 서면, 대기 중이던 수백 대의 카메라 플래시가 작렬한다. 마이크를 뭉쳐 든 기자가 따라 붙어 질문을 던진다. 혹여 무슨 말이라도 한마디 할까, 입술이 우물우물하는 순간 다시 차르르르륵. 대개는 원론적인 말만 나온다. 그러면 기자로서의 질문인지, 어느 단체 운동가로서의 주장인지, 국민으로서의 분노인지 모를, 호통에 가까운 거친 질문이 나오기도 한다. ‘기레기’ 조롱이 넘치는 SNS시대엔 그게 가끔씩은 ‘사이다’로 통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 포토라인은 만일의 불상사를 피하기 위한, 기자들의 취재 편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공적 책임을 진 자의 숙명이기도 하다. 동시에 수사기관의 검은(?) 속셈이 도사린 장치이기도 하다. 수사기관 드나드는 게 좋을 사람은 없다. 내키지 않는 곳을 가면서 수 백대의 카메라 세례를 받고,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다 몸싸움은 물론, 호통까지 겪고 나면 정신이 몽롱해질 법도 하다. ‘카메라 마사지’라고도 한다. 자기 나름의 방어논리로 바짝 날을 벼리고 출두했다손 치더라도 카메라 마사지 한 번 받으면 흐물흐물해지곤 한단 얘기다.
□ 사법농단 사건 수사가 진행되면서 갑자기 포토라인 문제가 부각됐다. 고위 법관들 출석 때부터 문제 되더니 지난 1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첫 검찰 출석 때 절정을 이뤘다.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 정문 앞 포토라인에 섰다고는 하지만 검찰청 앞 포토라인은 그냥 지나쳤다. 전직 대통령, 재벌 총수 등 사회적 위치와 책임 면에서 그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사람들도 피해가지 않았던 수사기관 앞 포토라인이었다. 그래서일까. 양 전 대법원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영장실질심사 때도 포토라인을 그냥 지나칠 지가 관심사다.
□ 2004년 17대 총선에서 지체1급 장애인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향숙 의원이 당시 집권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에 진출한 적이 있다. 장 의원을 떠올린 건 ‘장애인 1호 국회의원’으로서의 포부를 묻자 “이제 정부나 공공기관 어디든, 내가 일단 가기만 하면 그 기관엔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길이 놓인다”라고, 다소 싱거운 대답을 했던 기억 때문이다. 앞으로 양 전 대법원장이 가는 길 곳곳에도 인권이 꽃필까. 15년 전 장 의원의 대답은 씁쓸하면서도 유쾌했다면, 지금의 포토라인 논란은 그저 씁쓸하기만 하다.
조태성 사회부 차장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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